제241집: 세계평화통일가정당의 발족 1992년 12월 19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35 Search Speeches

어머님의 신앙생활의 신조

그래서 내가 식구들한테 얘기를 할 때는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1960년도에 아버지와 결혼하여 뜻을 받들어 나오면서 나대로의 결심한 것도 있지만,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고 지금까지 나올 수 있었던 신앙적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내가 하늘 앞에 선택받은 마지막 해와이다! 모든 6천 년의 한스러웠던 하늘의 섭리는 내 대(代)에서 모두 끝나야 된다! 잃어버렸던 하늘의 심정, 태초에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고 기쁨을 누리시려 했던 그 상태대로 이루어 드려야 된다!' 하는 것이 내 신앙생활의 신조입니다.

복귀섭리의 역사내용을 어렴풋이나마 아는 사람이면 다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육신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통해서 그런 영적인 체험을 많이 했고, 또 내 대에 있어서 내가 가는 길이 얼마나 어렵다고 하는 것을 하늘이 보여 줬어요. 그리고 내가 이 길을 걸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자녀들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하늘이 똑바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없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야 된다고, 기필코 해야 된다고 다짐한 거예요. 그때마다 하늘은 나에게 힘을 주시고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신앙적인 얘기들을 일본 식구들한테 하면서 내가 걸어온 길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이상 한 발짝도 더 움직일 수 없는 그런 데까지 도달해야만 하늘이 역사해 주시더라는 말을 했어요. 오늘날 일본 식구들에게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하늘이 더 크게 축복하시고 여러분을 통해서 그동안 하늘이 어려웠던 모든 것을 다 잊고자 하시는 참사랑인 줄을 깨달아 주면 고맙겠다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동안 아버님을 모시고 따라 나오면서 되도록이면 나를 중심한 생활은 철저히 배격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고 말을 삼가고, 보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이렇게 30년을 살아오다 보니까…. 사실 많은 청중 앞에 선다는 것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참어머니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일단 내가 단에 서면 하늘이 바라시는 그런 기준과 인간으로서의 내 위치가 말해 주는 그런 기준이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해서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나를 보호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과 아버님에 대해, 그 사랑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또한 이 시대가 바라는 이때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시기를 절감해서 나섰습니다.

한국의 81개 도시를 출발할 때는 한국 말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염려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본 대회할 때는 일본 말로 대회를 해야 된다는 것이 불과 2개월 전에 명령으로 떨어진 거나 다름없어요. 그냥 식구들을 놓고 대화하는 거라면 몰라도 더군다나 5만 청중을 놓고 해야 될 그런 상황이고 보니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암담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