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집: 뜻을 대하는 우리들 1972년 08월 1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39 Search Speeches

"뜻을 위해 위신, 체면 -이 보람 있게 살자"

여러분은 자신을 위해서는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중심삼고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희생시키는 데서부터 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 등등을 볼 때, 선의 역사를 창건하는 하늘은 희생을 시켜 가지고 세계를 구원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입니다. 이것은 복귀원리를 공부한 사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엄연히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고, 또 선생님도 지금까지 일대를 그러한 표준 밑에서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뜻이 문제입니다. 뜻이 어려움을 당할 것을 생각하면 자기의 존재 가치고, 위신이고, 체면이고 없는 것입니다. 똥구덩이에 거꾸로 박혀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 위신이라는 것은 죽은 다음에는 똥개도 핥지 않는다구요. 하늘나라의 똥개도 핥지 않는다구요. 하나님의 위신이 엉망으로 되어 있는데, 어머니 아버지의 위신이 엉망으로 되어 있는데, 효자의 명분을 갖겠다고 얼굴을 내밀 수 있습니까? 충신이 자기 위신을 차려요? 위신 찾고 체면 찾는 패들은 멀었다구요.

자, 통일교회 문선생에 대해 까놓고 얘기해 봅시다. 내가 위신을 찾으려면 누구보다도 예민한 사람입니다. 눈치가 빠르다구요. 사리 판단에 예민하다구요. 그런데 왜 지금까지 누더기를 뒤집어쓰고서 비참한 사나이 노릇을 하느냐? 밥이 그리워서 이래요? 뭐 딴 것이 그리워서 그래요? 그것은 나 자신, 내 손으로 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머리내기를 해도 누구에게 지지 않는다구요. 무슨 내기를 해도 누구에게 지지 않는다구요. 백방으로 소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거 해서 뭘 하느냐는 겁니다. 그걸 다 타진해 보고 돌아선 길이라구요. 이 길밖에 없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람있게 살자 이거예요.

보람있게 살자는 것이 욕먹고 사는 거예요? 선생님이 어디를 가게 되면, '저 사람이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지?' 뭐 별의별 말을 다 합니다. '그거 허우대는 잘났구만,상통은 그래 보이지 않는데' 이러며 뭐 어쩌고 어쩌고…. 그것은 선생님의 뼈가 녹더라도 잊지 못합니다, 잊지 못해요. 선생님은 무골충이 아니라구요. 이 통일교회 패들, 뼈 없는 사내, 아낙네들이 많다구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런 사람들은 오다가다 다 망해 죽는 것입니다.

이 일을 시작할 때는 개인적인 반대를 각오했고, 부모에게 몰릴 것을 각오했고, 처자 앞에 반대받고, 친지 앞에 고립될 것을 각오했고, 나라 앞에, 세계 앞에 몰릴 것을 각오했습니다. 각오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몇백 번, 몇만 번 각오한 사나이입니다. 갈 길이 정해져 있다구요. 여러분들은 가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간다 하는 것이 정해져 있다구요.

그러면 선생님이 가는 세계, 선생님이 가는 심정의 세계, 하늘나라가 있으면 그 하늘나라의 유업을 받고 싶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안 됩니다. 뜻을 대하던 예수의 전통적 사상을 중심삼고 사랑의 심정을 거치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계승되지 않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 선생님도 그 운명길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이요, 여러분은 더 허덕여야 될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선생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본 사람도 그렇고, 독일 사람도 그렇고, 미국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교수단들이 한 60여 명 일본을 다녀왔다는 보고를 어제 들었는데, 전부 다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거 왜 그랬느냐고 했더니 창피했다는 겁니다. 부끄러웠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나온 통일교회가 일본에 와서 이러고 있는데…' 그것뿐인 줄 알아요? 세상에서 부끄러운 것이야 가릴 수 있지만, 영계에 들어가서 부끄러운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 영원한 부끄러움은 어떻게 할 것이냐? 세상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 아니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