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집: 주는 어찌하여 가셨다가 오셔야 하는가 1957년 05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06 Search Speeches

유대민족으로부터 불신당한 예수님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부활하신 이후에 승천하셨기 때문에 다시 오셔야 할 섭리적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오랜동안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받들어 나오던 이스라엘민족 중에서도 택함을 받은 유대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을 택한 하나님의 바라심이었고 또 그들 자신의 소망이었습니다.

이러한 뜻이 이루어지는 한때를 바라셔서 하나님은 당신이 믿을 수 있고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전체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외아들인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인간 앞에 주인으로 나타내셔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려던 축복을 이루셔야 했고, 또 역사적인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뜻을 종결지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이 어찌하여 이 땅에서 섭리의 뜻의 성취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이상동산을 이루시지 못하고 가셨는가?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슬픔을 자아내게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돌아가실 때까지의 노정은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가는 그런 생애의 노정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어려운 자리, 누구보다도 외로운 생애를 거쳐 가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이상을 한 몸에 지니고 한 세대권, 한 시간권내에 한 존재로서 나타났던 분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예수님의 가치를 하늘이 바라보는 것과 같은 가치로서 알아주는 사람이 이 땅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예수님을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사랑의 중심존재로서 모셔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생활을 하셨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을 친구로 세워놓고 자신의 슬픔을 토로할 수 없었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불쌍하게 살아가셨다는 것을 오늘 여러분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스라엘민족의 기쁨이 되고, 유대교단과, 세계 인류의 기쁨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인 그분은 온 인류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예수님은 굶주림과 슬픔을 당하는 불쌍한 생활을 하셨던가?

시대는 변하고 역사는 경과하였으나 여러분은 예수께서 생존시에 느끼셨던 서러움과 고독함을 체휼하여 그의 불쌍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하늘 땅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못한다면, 슬픔과 외로움으로 맺혀져 있는 예수님의 원한을 풀어 드릴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망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고 자기 자체를 희생해서라도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피조세계의 중심존재로 세워졌던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창조이상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4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나오셨고,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시조의 과오를 책임지고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이념, 자신의 목표로 삼고 나타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민족은 그러한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유대민족은 예수님의 일신이 역사적인 소망을 대신한 동시에 당시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대신한 분이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고고(孤高)한 한 개인이로되 그 자체는 역사를 대신할 수 있고, 현실을 대신할 수 있는 동시에 천륜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이상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오던 이스라엘민족과 유대교단은 예수님이 그러한 분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협조하기는 커녕 공공연(公公然)히 방해하고 핍박하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