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집: 제4회 부모의 날 말씀 1963년 03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7 Search Speeches

부모의 날을 맞을 수 있게 된 고마움을 알아야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념하는 부모의 날은 어떤 날이냐? 이 만민의 부모, 수많은 인류의 부모들이 고통권 내에 있는 이 전체를 수습하고 이걸 전부 다 가로채 가지고, 천적인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민족 민족에 걸린 원수의 그물들을 모두 끊어 버리고, 섭리의 이스라엘 역사 앞에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유린한 역사적 모든 것을 타파해 버려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개체로서, 수많은 자녀들을 대표할 수 있는 개체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가정으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종족으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민족으로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 천지가 부모로 모실 수 있는 이런 길을 닦아 놓아야 할 그런 심정적인 기반을 연결시켜 놓고, 사정에 있어서는 이런 내용의 사정을 걸고 투쟁하여 사탄세계 앞에 승리적인 기준을 세워 놓지 않으면 부모의 날이 나올 수 없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단 말이예요.

이 놀랍고 황공한 부모의 날, 여기에는 피어린 역사적 한이 어려 있고, 여기에는 슬픈 메시아의 고통이 남아져 있고, 여기에는 십자가의 장벽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 장벽을 거쳐 손을 내밀어야만 자식의 손을 붙들 수 있고, 자식은 이 장벽을 타고 넘어야 아버지의 손을 붙들 수 있는 이런 한스러운 역사가 남아 있으니 이 담을 헐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하늘의 투쟁 역사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오늘날 우리를 찾아와서 '야,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부를 지라도 여러분은 귀가 먹었어요. 여기 우리 눈앞에 나타나 가지고 여러 가지로 갖은 형용을 다 하여 나를 보라고 하고 우리를 보고 뭐라고 손짓해도 여러분들은 눈이 덮혀 있어요. 여러분이 아무리 심정이나 마음이 있다 해도, 그 마음을 아무리 뒤흔들어도 마음이 방향을 잡지 못하였던 내 자신이라는 거예요.

내 감각은 무디어 있어서 스스로 찾아갈 길을 잃어버린 방황자입니다. 방황하는 고아와 같고, 혹은 방랑아와 같은 신세인 이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하늘은 이런 나를 붙들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으며, 내 눈을 열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으며, 내 귀를 열고 내 감정을 열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왔는데 '나'를 들어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까지 만들기에 얼마나 하늘이 수고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들을 줄 몰랐던 것을 들을 수 있고, 볼 줄 몰랐던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줄 몰랐던 것을 느낄 줄 아는 이런 자리에 서 가지고, 과연 우리가 모실 수 있는 참의 부모라는 그분의 심정을 동경하면서 그 자리에 머리 숙여 눈물지을 수 있는 이런 환경을 보여 주는 것만 해도 여러분에게는 한이 안 될 것입니다. 어느 면에 있어서는 무한히 행복하다는 거예요.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날을 맞이하여 축하할 수 있는 한 무리로서 하늘 앞에 엄숙한 이런 식전에 참석할 수 있는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며,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이며,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기에 참석할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어서 느꼈느냐 하게 될 때에 여러분이 여기에 답을 해야 될 거예요.

이런 환경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안다는 거예요. 이제 우리의 하나님의 사정이 어떻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고, 하나님의 소원이 어떠어떠하고, 이 세계는 어떻게 흘러나가 가지고…. 이것이 우리와 최후에 맞부딪치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맞부딪치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맞부딪치느냐? 여러분들은 아들이요, 하늘은 반드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합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데, 이것을 연결시켜 가지고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부모가 있나니 그 부모가 참부모입니다.

지금까지 갈라졌던 이 부모와 자식을 연결시키기 위해 하늘이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먼저 선두에서 투쟁하여 수습하여 왔습니다. 역사는 이러한 형태를 거쳐왔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의 도리를 중심삼아 아담으로부터 여기에서 이 기준에 올라올 때까지 하늘은 투쟁역사로 돌고비길을 걸었습니다. 이것은 고통의 상징으로, 이게 크면 클수록 큰만큼 거기에 대비되는 고통의 상징으로 역사를 지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