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집: 축복받은 자들 1986년 02월 09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51 Search Speeches

마리아와 세례 "한의 실수로 축복을 받지 못한 예수

그러면 예수님이 축복받았어요? 「아니요」 누구 때문에? 한국 말을 보게 되면 '이건 말이야', '저건 말이야', '글쎄 말이야', '정말 말이야' 하는 말들이 있는데, 왜 한국 사람은 '말이야, 말이야'를 찾느냐 하면, 그것이 '어머니'를 찾는 대신 말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 마리아…. 한국 사람은 마리아를 잘 부르지요? 거 왜 그럴까? 계시적인 민족이기 때문에 마리아를 찾는 거예요. 예수님을 죽게 한 제일 장본인이 마리아였어요.

요즈음에는 천주교 신부들도 그것을 알고 내 말을 세계적으로 믿어 가지고 교황청까지…. 대처승, 비구승 마냥 대처 신부, 비구 신부 이렇게 해 가지고 문제 되고 있는데 대처 신부를 살리는 길은 통일교회 레버런 문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교황청에 하나의 교파가 생겨난다구요. 무엇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원리를 중심삼고. 별스러운 일이 생겼지요?

마리아가 책임 못 했다는 거예요. 요셉이 책임 못 했고. 사가랴가정하고 요셉가정이 짝짜꿍해 가지고…. 간단하다는 거예요. 요셉은 예수를 아버지로 모시고,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세례 요한을 아버지로 모시고, 알겠어요? 사가랴가정에서 태어난 딸을 어머니로 모시고…. 그럴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랬다면 예수는 틀림없이 결혼했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두 대가 협조 안 해 가지고는 안 돼요. 두 대, 가인 아벨이 전환되지 않고는 어머니를 찾을 길이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선악이 갈라져 꺼꾸로 되었으니 교체되어야 한다구요. 위에 서야 할 선이 지금까지 아래에 있었으니 아래에 있던 것이 올라가고 위에 있던 것이 내려가는 요 교차점에 이르러 가지고 전환하기 위한 역사적 책임을 메시아가 해야 됩니다. 메시아가 그때 오는 거예요. 그러니 요셉가정과 사가랴가정이 가인 아벨 족속과 같이 바꿔져야 돼요.

전통적 이스라엘 역사를 놓고 볼 때는 사가랴가정이 귀해요, 요셉가정이 귀해요? 사가랴는 대제사장이예요. 요셉은? 「목수입니다」 목수지요. 평민이예요, 평민. 평민이 대제사장을 굴복시켜야 돼요. 사가랴가 요셉 앞에 굴복해야 된다 이거예요. 바꿔쳐야 된다구요. 제사장이던 사가랴는 예수를 왕 중의 왕 제사장으로 모셔야 되는 거예요. 예수는 자기 조카예요. 예수와 세례 요한은 이종사촌간이예요. 그거 가능해요? 그렇기 때문에 뒤집어져야 합니다. 바꿔져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을 가려 줘야 할 책임이 마리아하고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데도 불구하고 그 일을 몰랐다는 거예요.

그걸 그렇다고 예수가 가르쳐 줄 수 없는 거예요. 복귀노정은 자기가 5퍼센트 책임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여자들이 해야 할 책임을 못 했다는 거예요. 응당 예수 나이 30이 됐으면 의논을 해야지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할 때 어디 갔어요? 사가랴 집에 갔지요? 그렇다면 예수가 장가갈 때 되었으면 친척 집 찾아가서 의논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들은 친척 결혼하는 거예요. 예수하고 세례 요한 동생하고 결혼했던들 세례 요한이 예수를 모셨겠어요, 안 모셨겠어요? 가정적으로 해결하는 거예요. 떠돌이 되어 가지고 무슨 물세례 주면서 뭐 '나는 낮아져야 되고, 그는 높아져야 돼' 그런 수작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 등등의 사연을 중심삼고 볼 때, 얼마나 어려운 곡절을 거치면서 본연의 기준으로 돌아가야 할 축복의 기준을 흠모했던고! 예수 일대를 두고 흠모했던 그 자리를 예수 자신이 찾지 못했다는 거예요. 예수가 죽은 후 2천 년 동안 따르던 수많은 성도들을 피가 마르지 않게끔 피의 제단에 연결시켜 가지고 2천 년 역사에 세계적 기독교 판도를 중심삼고 재림이라는 한때를 중심삼고 오는데, 영광의 자리에 올 수 없어요. 피의 제단에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피를 맑힐 수 있는 길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는 전수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예수의 원한을 알아야 돼요. 예수는 원한을 이 땅에 왔다 남겨 두고 갔다는 거예요. 그러니 재림시대에 있어서는 그 원한을 풀고 본연의 사랑을 할 축복자들이 있을 수 있는 그 자리를 얼마나 흠모해야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도 그래요. 선생님이 어머니 모셔 온 것이 40세 때였어요. 축복의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그리운 자리고, 축복받은 자들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지만 선생님은 잘 알아요. 아시겠어요?

예수님도 그걸 알았다는 거예요. 얼마나 그리워했던 곳이겠어요? 그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머니 시선으로 바라보는, 요셉 일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례 요한 일족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축복받은 자들이 있을 곳을 그리워하면서 얼마나 적적했을 것인고! 그건 밥을 먹어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고, 한 해가 가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깊은 사연을 가지고 얼마나 동경했을꼬? 30여 년 동안 동경했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이슬로 사라지는 비운의 사나이로 왔다 갔다니 기가 찬 일이라구요. 그러니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뜻이 어떻게 됐어요? 창조위업을 결속하여 이상적 세계와 통할 수 있는 그 길을 타락한 이후에 재차 찾으려고 했던 것이 또다시 연장을 봐야 할 비운의 역사를 하늘은 가졌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