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집: 우리의 책임 1969년 07월 2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33 Search Speeches

책임 완수와 심정 일치

여러분에게는 삼자의 심정이 일치되는 가운데 하루면 하루의 생활을 어떻데 해 나가느냐, 또 한 달이면 한 달의 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 일년이면 일년을 어떻게 그런 기준으로 수습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정이 확고하고 공고하게 일치되지 않으면 아무리 책임을 완수했다고 하더라도 복귀섭리노정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에 내적으로 삼자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가는 길이 어떠해야 되냐. 자식들은 모든 존재의 가치를 부모를 통해 찾습니다.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자녀는 누구를 닮느냐? 부모를 닮습니다. 그 자녀들이 누구를 따라가느냐? 부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책임을 추구하게 될 때, 그 책임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삼자의 일치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련하지 않고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을 모셨다면 그때부터 그 관계는 맺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이 지향하는 목적 앞에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의 목적도 일치되었을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된 목적을 가진 아담 해와의 자녀들 역시 같은 목적을 바라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은 모든 가정과 종족과 나라 전체의 소망이 되었을 것이며 전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전부 다 달라졌습니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전부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다른 자리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을 추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목적이 하나의 기점에 연결되지 않고 전부 다 사방으로 분산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속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인간 조상 아담 해와가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분산된 것이기 때문에 부모를 중심삼고 결속시켜야 됩니다. 거기에는 민족적인 차이도 있을 것이요, 문화의 배경이라든가 지식의 배경, 혹은 소성(素性)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이 서로 상반되어 천태만상의 형태를 갖추고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속시켜야 됩니다. 출발점은 하나입니다. 뿌리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봄 동산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은 잎으로 남아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줄기에 의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줄기와 잎이 존재 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며 거기에서 비로소 꽃이 피는 것이요,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꽃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잎이 존재하는 것이지 그 잎 자체가 꽃이 되고 그 잎 자체가 열매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