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섭리의 십자로 1972년 07월 0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5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이상하" 패턴을 '심삼고 참된 남자 -자가 상봉해야

지금은 어떤 때냐? 끝날입니다. 그런데 이 패턴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가 역사시대 어느때에 대표해서 나타난 적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 앞에 있어서, 지금까지 인간역사는 무엇을 해 나왔느냐? 완전한 남성 하나를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종교가 나와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 하나님이 패턴으로 그리던 이상형의 하나의 남자를 다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 표준을 따라 가지고 그 표준 앞에 일체되는 대상의 실체를 그려 보기 위해서 수많은 종교의 교주들이 노력했지만, 그것은 아직까지 형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남자 하나를 못 찾았다구요.

그러므로 남자를 못 찾은 권내에서는 부처(夫妻)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신생활을 하라고 한 거예요. 참된 개인이 없으니 나라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참된 나라는 참된 개인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가정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참된 남자로부터, 참된 여자로부터…. 먼저 있어야 할 것이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가 아니예요? 역사시대에 아직까지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패턴을 못 찾아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맙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독생자라는 이름을 갖고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순수한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거기에 상충적인 내용을 지닌 아들이 아니라 본질적인 사랑에 화할 수 있는 역사시대의 하나의 남성적 대표자로, 신랑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신부를 맞이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세계 앞에 남자 여자가 하나님이 이상하는 패턴을 중심삼고 상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바라는 재림사상입니다.

이 가정이 벌어지기 전에는 아무리 세계에 가정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안중에는 없는 것입니다. 패턴을 찾으라는 거예요. 그런 가정에서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도리가 오늘날 인륜도덕의 원칙이 될 것이 아니냐. 부모, 부부, 자녀의 인연, 하나님이 그리는,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사위기대 원칙에 입각한 이상적인 본연의 형태의 기준을 어떻게 결정짓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걸어 놓고 통일, 평화를 꿈꾸는 데에는 이런 기본 문제가 남아 있으니, 이것을 결정짓지 않고는 통일세계는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기본 문제에 있어서의 개인적 남성 패턴과 여성 패턴을 중심삼고 가정적 패턴을 형성하는 데서부터 통일의 세계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언제든지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패턴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는 그러한 개인적 패턴, 가정적 패턴을 이룰 수 있는 대표자로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중심삼고 '그대가 이루고 싶었던 가정을 이루어 보소서' 하던 이상적인 패턴을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못 이루었던 것이 아니예요? 왜 그러냐? 옥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정적 패턴뿐만 아니라 종족적 패턴을 이루었을 것이 아니예요? 예수님에게는 섭리에 입각한 패턴이 있었을 것이고, 거기에서 민족적 패턴이 나왔을 것이고, 국가적 패턴이 나왔을 것이고, 그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적 패턴이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이 역사시대에는 그 패턴 형태의 규격을 따라 가지고 새로운 민족,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재차 그러한 패턴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남성(예수님)을 대신해서 다시 세계에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가 끝날입니다.

이것이 역사 이래 예수님 때에 이루었어야 할 것인데, 다시 이때에 와 가지고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그 패턴으로 평면적인 무대에서 다 연결된다면, 개인에서 가정,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까지 한꺼번에 그 패턴을 통과해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가 끝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