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집: 삶의 길을 찾아서 1962년 11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7 Search Speeches

타락으로 인해 공포와 사망의 세계-서 살고 있" 인간

그러면 이제부터 선생님이 잠깐 동안 말씀 한마디 하고 가겠어요. 제목을 잡으라면 `삶의 길을 찾아서'입니다. 내용을 말하라면 그렇게 될거예요, 삶의 길을 찾아서. 여러분들은 싫든 좋든 부모들이 낳아 줌으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말이예요. 태어나고 보니 하늘이 있는 것을 알았고, 땅이 있는 것을 알았고, 또 태어나고 보니 이 세상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말이예요. 사방 어디를 가든가 나 외의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알았고, 또 바라보면 땅이 있는 것을 알았고, 하늘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이 세계에는 모든 사회가 있고, 또 나라들이 있다 이거예요. 그 나라들을 중심삼고는 그 나라를 다스리는 주권이 있고, 그 주권을 중심삼고는 개개 민족이라든가 국민이 있고, 그 국민을 위주로 해서 땅 짜박지를 갈라 가지고 땅들을 갖고 있단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세계를 보게 될 때 `아! 이놈의 세계를 요렇게 만들지 않고 전부 다 두루뭉수리하게 해 가지고 하나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미국 사람은 무엇이고, 한국 사람은 무엇이고, 뭐 어디 나라 사람은 무엇이고, 뭐 깜둥이는 무엇이고, 흰둥이는 무엇이고, 노랑둥이는 무엇이냐?

여러 가지 복잡한 인류들이 땅에 살고 있고, 그들이 살고 있는 땅 자체들도 역시 복잡한 국경선을 중심삼고 엉클어져 있어요. 그러면서 그들이 좋게, 서로서로 안 보면 못 살고 안 만나면 못 산다는 입장에서 산다면 그래도 괜찮은데, 내가 저쪽으로 갈 때도 `오지 말라' 하고또, 저쪽에서 올 때도 올까봐 두려워한다구요. 갈래야 갈 수 없고 올래야 올수 없고, 내가 가려고 할 때 거기서 나를 믿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저 사람이 오려고 할 때 내가 `오라'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고 저 사람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가게 되면 나를 의심하는 것뿐이 아니라 걱정을 하고 바라 보고, 조금 더 나가게 되면 `아이쿠, 나를 잡아먹기 위해서 오지 않나? ' 하고 두려움으로써 그 사람들과 대항하여야 할 이런 세상이 되어 있더라 이거예요. 대충 얘기하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세계가 그런 동시에 여러분 한 자신을 두고 볼 때…, 자신을 가만히 보자 이거예요. 자, 그러면 `오, 나는 이렇게 세계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전부 다 저런 식을 만들면 좋겠는데, 그랬으면 좋을 것 같은데… ' 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면 어느 한 때 누구를 대할 때마다 좋을 수 있는 내 행동을 가졌고, 어느 한 때 전부가 좋아할 수 있는 내 말씀을 가졌고, 어느 한 때 나를 좋아할 수 있는, 내가 누구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 있느냐를 생각할 때 그런 과거가 있었어요?

자기를 낳아 준 부모가 `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된다' 하는 의미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부모의 마음에 `야, 내 아들은 참 천하에 하나밖에 없구나! 하늘도 주고 땅도 주고 온 전부 내 생명까지 주고도 바꿀 수 없고, 또 그러면서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인 동시에 온 천하에 드러내서 자랑하고 싶은 내 아들이다'라고 부모가 말할 수 있고 보증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 있느냐 하면 아니예요. 걱정이예요, 걱정. `저 녀석이 언제 자라서 저렇게 될 것이냐? ' 그러고 있다구요.

사회가 악하면 악할수록 그 악한 사회에 자식을 내놓은 부모들은 그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자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편안히 잠을 자고 있지만 부모의 시선에는 슬픔이 어리며 `행여나 저들이 이 가문을 망치고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자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라구요. 사랑하는 부모라고 하지만 부모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여러분들을 바라보고, 여러분의 자는 모습도 바라보고 새로운 면에서 더 좋은 아무개가 되었으면 하며 기대하고 계시는 부모가 돼 있더라 이거예요.

이렇게 보면 이 세상은 전부가 좋아하는 환경과 좋아질 수 있는 환경에서 사는 세상이 못 돼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를 위주해 살고 있는 자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런 관계에 못 놓여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것이 뭐 큰 것은 다, 넓은 것은 다 제해 놓고 여러분을 중심삼은 가정을 두고 볼 때에 형제끼리도 그렇다 이거예요, 형제끼리도. 자기가 조금만 못하면 `이게 뭐야, 이게? ' 하며 형제끼리도 싸운다구요. 형님 동생끼리 `이 자식아' 하는 거예요. 그것도 좋다는 거예요. 싸우는 것도 좋다는 거예요.

좋은데 `이 자식, 형님 틀렸다' 할 수 있는 그 기준이 어디서 이루어지느냐 이거예요. 그 기준조차 전부 다 믿을 수 없는 기준에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 걱정해야 할 세상이요, 믿지 못할 세상입니다. 걱정하고 믿지 못할 세상인 동시에, 또 가만히 생각하면 무서운 세상이예요. 무서운 세상인 동시에 공포의 세상이예요. 공포의 세상인 동시에 공포의 세상에 사는 내 자신이 이것을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게끔 아주 뭐 단단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디에 얽매어진 오늘날 내 자신이 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이 그러하고, 가정이 그러하고, 사회와 국가와 오늘날 전세계 사조가 그러하다는 거예요.

믿을 수 없는 세계입니다. 또, 공포에 찬 세계입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가서는 공포만이 아니라 사망의 물결이 나를 휩쓰는 세계예요. 나혼자 무서워하는 환경과 두려워하는 환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 자식아 죽어라!' 하며 사망의 물결이 여지없이 몰아치는 이런 환경에서 인간들이 살고 있다 이겁니다.

오늘날 현재의 세계를 바라볼 때, 공포의 세계요, 사망을 염려해야 하는 전초지에 있다 이 말이예요. 그렇지요? 「예」 이것이 왜 이렇게 됐느냐? 이렇게 된 것이 타락 때문이예요, 타락. 타락의 보응은 무엇이냐? 사망이예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떻게 된 것이냐?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죽은 나로부터 살아가는 나로서 삶의 길을 찾아서 그 길을 닦아 나오는 데 있어서 개인이 살 수 있는 그런 길을 닦아야 되겠고, 가정이 살 수 있는 그런 길을 닦아야 되겠고, 그다음에는 사회가 살 수 있고, 국가가 살 수 있고, 세계가 살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