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집: 예수님의 한 1968년 01월 1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9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안다면

개인으로서의 노아와 그 가정을 잃어버린 하나님은 400년 후에 아브라함을 세워 역사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또한 뜻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또 다시 400년 후에 모세를 세워 역사하면서, 아브라함을 세워 역사할 때와 같이 환경적인 조건을 맞춰 나가야 했기 때문에 할례의 법도를 세워서 이방 사람까지 끌어 넣는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해, 민족적인 시대가 다가옴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애급에 때려 몰아넣고 연단시킨 것입니다. 때려 넣은 것은 무엇 때문에 그랬느냐? 그것은 합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었습니다. 하나 되게 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대하고 있는 바로궁중은 원수다. 애급 사람들은 철천지 원수야' 이렇게 연단시켰던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살 수 있는 한 곳이 있다 할진대 전부다 '옳소이다, 할 수 있는 한 때를 바라보면서 몰아 넣었습니다. 몰아 넣는 그 시기가 민족적인 섭리 시기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민족을 대표하여 모세를 모험의 선봉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그는 미지의 가나안 땅을 향하는 정탐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결의를 가진 탐험의 용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가 바로 궁중을 반대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미지의 노정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어떠한 어려움이 가로막혀 있더라도 그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선조로부터 약속한 가나안 땅, 그 본향을 찾아가는 그의 마음이 어찌 변할 수 있었겠습니까? 비록 바로의 땅에서 살고 있었으나 그 심정에는 가나안 땅에서 행복을 노래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이에게까지 백절불굴의 심정을 갖게 하고 전진의 일로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모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60만 대중을 거느리고 출발하였으나 광야의 40년노정에서 다 잃어버렸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같은 심정으로 모험할 줄 알았던들 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약속의 땅이 어떤 곳인지 그 땅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어떠한 생활적인 의식과 감정보다도 강했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절대로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구 배고파 죽겠구나, 아이고 우리는 죽는구나' 하고 아우성쳤던 그들이었기에 광야에서 쓰러진 것입니다.

역사상의 어떤 위인, 혹은 선각자가 있다 할진대 그들은 그 시대에서 즐기고 만족을 느끼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더 높은 이념의 한 곳을 향하여, 약속된 한 곳을 목적지로 삼아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리고 탐험적인 길을 갔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하여 달음박질하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홍해가 웬말이며, 또한 광야에서의 아말렉 족속의 공격이 웬말입니까? 40년 동안 유리방황하다가 바로의 속박에서 풀려 나온 장정들은 모두 지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고 그들을 인도했느냐? 12지파를 대신한 열두 사람을 세워서 가나안 땅을 정탐시켰을 때 그들이 하는 말은 자기들 힘으로는 가나안 7족을 당하지 못한다는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열두 사람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시대에 있어서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미욱박이이며 고집장이고, 죽을지 살지도 모르고 뛰어드는 모험 기질이 왕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부가 반기를 들고 있을 때, 당당코 나타나서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바로의 목을 쳐누르던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을 가로막고 있던 홍해를 갈라 쳐서 탄탄대로의 길을 만들어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광야에서 굶주림에 허덕일때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 주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가는 길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라고 외쳤던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개척의 복귀노징을 찾아가야 할 이스라엘이었던 연고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시고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