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집: 개척자가 되신 예수의 실체 1959년 02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2 Search Speeches

시련과 고난으로 점철된 예수님의 공생애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 30년 준비기간을 서글프게 사셨던 예수, 그 예수 앞에는 심정에 어리어 그를 알고, 그에게 경배드리며 그를 모실 수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보기에 추한 불구자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사실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었던들 오늘날 후대의 우리 인간들은 면목이라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하늘 앞에 빚진 것이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례 요한의 30년 준비노정을 바라보면서 무한히도 기대를 가졌던 예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생애의 노정을 출발하는 실천의 한날을 바라고 있던 예수님이 드디어 준비기간을 거쳐 실천과정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민족이 환영할 줄 알고 혹은 세계 요한이 환영할 줄 알고 찾아가 보았으나 민족도 세례 요한도 냉대하고 반대했습니다. 유대교단도 반대했습니다. 준비기간에 있어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나온 예수가 실천의 일보를 나서는 데 있어서 이스라엘민족을 터로 하여 세계를 대하여 싸워야 할 것이 본분인데 오히려 그들이 자신을 반대하고 나서니, 오히려 이스라엘민족을 대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처참한 실천노정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천년 동안 수고하여 메시아 준비를 했던 이스라엘민족은 제2차로 밑바닥부터 다시 개척의 사명을 하게 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섭리하여 쌓아 왔던 전체 발판이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가 타락한 직후에 섭리하시던 그 역사노정의 절대성을 가지고 다시 되풀이하여 전체 백성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의 슬픔을 우리가 생각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택한 백성이라고 찾아갔던 걸음이었는데 오히려 그들로부터 쫓김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간 곳이 어디인고. 하늘이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세웠던 이스라엘민족이 하늘을 배반하고 오히려 사탄의 입장에 서니, 이것을 바라보는 예수의 서글펐던 심정을 누가 알 것인가.

그래서 예수는 광야에 나가 40일 금식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예수가 이렇게 불쌍한 분이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미처 몰랐을 것입니다. 하늘의 독생자요, 하늘의 황태자인 예수가 인간 세상을 찾아와 인간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광야에 나가 먹을것 먹지 못하고, 하나님이 원수인 사탄 앞에 시험을 받는 분통한 이 사실을 그 시대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예수의 분한 노정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분함을 어떻다고 말로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분함으로 말미암아 가슴에 아픔을 느끼고 있는 예수는 자기 일신의 서글픔을 보고 하늘이 염려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슬픈 심정도 표시하지 않으시고 하늘 대하여 지극한 효심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우리들이 회상해 볼 때, 예수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늘을 배반하던 그런 경지를 떠나 자기를 위하여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슬픔을 놓고 응당히 기도해야 할 입장인데도 이것을 피하고 분한 마음을 억제하면서 하늘을 위로하려 했기 때문에, 타락의 슬픔을 돌이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소망의 길을 열어 놓을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30년 준비기간에 있어서 이것을 실천의 노정으로 찾아 세우겠다고 각오하였습니다. 자기의 나선 발걸음이 민족을 원수삼아야 할 것을 아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선조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슬픔의 역사를 빚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은 변화산상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은 심정으로 민족적인 서러움을 염려하면서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고, 예수님 대신 기도하기를 바랐습니다. 바로 이러한 제단을 쌓아야 할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딴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통해 죽음의 한날을 예고받는 입장에서 새로운 각오를 했고 그날을 맞기 위해 준비하는 생활을 하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