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 하늘을 향하는 결심을 잃지 말자 1958년 02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8 Search Speeches

배반당해도 변치 않은 결심의 가치

그리하여 이삭을 모리아산상의 제단에 올려놓고 칼로 찌르려고 하는 마당에서 죽음의 제물을 대신할 수 있다는 하늘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삭도 아버지 앞에 복종하였고, 아브라함도 아버지 앞에 복종하여 그들은 천륜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그후 이삭을 거쳐 야곱 때에 이르러서 야곱을 중심삼고 비로소 아담가정을 대신하고 노아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삼대(三 代)의 친족형태를 갖춘 70인이 가나안땅을 떠나 애급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들을 거쳐 손자까지 땅 위에 세 형태의 친족적인 형태를 갖춘 토대로 말미암아 그들은 사탄세계에 파송되어 애급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개인으로부터 가정, 그리고 친족적인 환경을 세워 놓은 후에도 그들은 평안한 길을 걸어간 것이 아닙니다. 친족적인 70문도를 대신하는 그들은 또다시 민족을 조성하기 위한 민족적인 싸움을 전개하며 하나님을 중심한 민족을 형성해야 할 시련의 무대에 올라섰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궁중 4백년의 고역기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고역기간에 택한 이스라엘민족은, 옛날 자기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였던 것을 후회하고, 다시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돌아갔어야 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스라엘백성은 극심한 애급에서의 고역을 이겨내고 단결하여 60만을 몽땅 이끌고 가나안복지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쉽게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급에서 고난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민족을 인도해야 했던 모세도 바로궁중에서 40년 동안 남이 모르는 심적인 고민을 하면서 민족을 사랑하는 민족정신에 불타 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애급사람을 때려 죽인 것이 드디어 광야에서 처량한 목자의 생활을 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처한 모세는 애급 궁중의 호화로왔던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도리어 미디안 땅에서의 고역생활이 닥친다 하더라도 변치 않는 마음을 품고서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광야의 온갖 풍우에 시달리는 서글픔을 맛본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밀어제치고, 민족으로부터 몰림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을 붙들었던 모세의 변치 않는 결심이 있었던 연고로, 민족이 어려운 사정에 처하고 모세가 그런 고난의 환경에 들어갔을지라도 민족이 단결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요, 하늘은 모세를 세워 섭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민족을 다시 택한 국가로 세우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시련 앞에 그민족을 몰아넣어 놓고 공격전을 전개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한 방법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국가 건설을 위하여 오시는 메시아는 택한 이스라엘민족 앞에 반대받는 것입니다. 복귀과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담가정에 있어서 아담을 따라야 할 해와가 아담을 쳤고, 노아를 따라야 할 노아의 아들이 노아를 쳤고, 이스라엘민족 60만 대중이 모세를 따라야 할 것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쫓아냈습니다. 이러한 역사과정을 거쳐왔던 연고로 예수님이 주인공으로 오게 될 때에 택한 백성은 예수 앞에 신부격이었으나 오히려 이들이 예수를 반박하였다는 것입니다.

천륜의 법도를 아시는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한테 몰렸고, 유대교단으로 부터 몰렸습니다. 자기의 종족 앞에 몰렸을뿐만 아니라, 하늘이 택한 세례 요한 일당한테 몰리고, 따르고 있던 사도들로부터 몰렸습니다. 하늘 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세 제자로부터 몰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을 붙들 어서 하늘 앞에 끌어 주어야 할 예수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았느냐. 아담이 예수와 같은 사정에 처해서 해와의 갖은 흉악한 궤휼과 유혹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를 꺾어야 할 입장에 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입장도 민족을 찾아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민족 앞에서 몰리어 광야의 서글픈 생활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가 민족 앞에 몰리게 되면 세계 앞에도 몰려야 할 입장에 놓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렇게 '민족이 배반하고 교단이 배반할지라도 내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일편단심을 어느 누가 빼앗아가랴. 내가 세운 결심 앞에는 하늘이 세웠던 세례요한이 배반한다 하더라도 문제가 아니요, 나를 따르고 있는 제자가 배반하더라도 문제가 아니야. 더 나아가서는 내 몸뚱이가 문제가 안된다고 하는 이런 결심이 있었기에 서글픈 일이 있어도 서글퍼할 수 없었고 슬픔의 자리에서도 슬픔의 표정을 지을 수 없는 복귀의 운명을 책임졌던 예수의 심정을 오늘날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대한 하나의 결심을 갖고 재물됨을 만 우주 앞에 내세워 인간이 반박해도 깨지지 않고, 영계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오늘날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이 총동원하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이런 결심이 있었기에 여기에서부터 역사적인 전환점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