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집: 복귀의 행로를 찾아서 1971년 04월 1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40 Search Speeches

수난을 극복할 수 있" 것

우주 가운데 슬픔만이 남아진다고 하면 인류에게 소망이니 희망이니 하는 것은 다 망상일 것입니다. 이 우주는 절망으로서 끝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희망은 전부 다 절망 속에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그런 희망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의 요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의 슬픔도 지나가고 절망도 다 지나갔을 때 남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인간들이 원하는 경제문제냐, 아니면 우주적인 인격이냐? 사람이면 사람,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인격을 연결하고 있는 정서적인 면이 문제입니다.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기쁨이 있다고 할 때, 그 기쁨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되느냐? 절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은 무엇으로 연결되느냐? 그것은 돈도 아니요, 사람도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들 각자가 지고 오던 수난을 넘었다 하는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인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인격 형성의 밑바탕이 되는 정서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는 수십년의 수난의 행각을 걸었다 하더라도 그 자식을 찾고 나면 기쁨만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어느때엔가 꼭 자식을 찾고 평안함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갈 때, 어떠한 수난의 길도 그 부모의 심정을 막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을 찾고 있는 아내의 걸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난의 길이 아무리 험하다 하더라도 남편을 만난 이후에 있을 정서적인 면을 아는 그 아내 앞에는 수난의 길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생명보다도 더 가치있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가는 아내가 있다면 그에게는 수난의 길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참한 역사과정에서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오늘날 인류 앞에 최후로 남아질 것이 무엇이냐? 돈많은 사람도 아니요, 지식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철학자들이 찾고 있는 절대적인 존재가치도 아닌 것입니다. 절대적인 존재가치는 심정문제와 사랑문제를 해결하는 자리에서만 이야기가 되는 것이며, 그때에 비로소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타락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랑의 마음을 갖고 나오셨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갖고 나온 하나님은 섭리의 출발 당시부터 인간들에게 지식의 내용을 가르치는 것보다도, 인간은 이래야 된다는 외적인 진리를 교육하는 것보다도, 사회와 세계에 대한 사정을 이야기하기 보다도 보다 가치있는 사랑에 대한 내용을 가르쳐 주어야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대해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을 중심삼고 가르쳐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아버지 입장에서 가르쳐 줄 수 있는 교육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사랑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의 경전은 사랑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 못한 만큼 더 갈라짐이 있고, 더 고충이 있고, 더 수난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가르쳐 줄 수 있는 때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극복 해야 할 수난의 길과 탄식과 한의 길이 지나가야 할 그 자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중요한 내용은 전부 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을 제시하는 것들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데 인간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사랑은 주면 반드시 돌아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내가 무한한 사랑을 주었으니 너도 무한한 사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속적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었는데 돌아오지 않으면 천지의 인연이 끊어지게 됩니다. 반드시 주고받는 데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웃을 때도 혼자 웃고 나면 그 후에는 허탈감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라 하는 그 말이 무슨 뜻이냐? 내가 너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겠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