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집: 인류의 새로운 장래 1975년 04월 25일, 한국 전주 실내체육관 Page #290 Search Speeches

우주창조의 원칙을 위하- 존재하" 데- 설정하신 하나님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이 대상 되는 인간을 떡 지어 놓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구요. 인간을 지어 놓고 보니 도대체 참된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기원을 어디에 근거를 둘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둘 것이냐? 참의 기원이 어디이냐? 진정한 참의 사랑의 기원이 어디이고, 진정한 참의 이상의 기원이 어디이며, 진정한 행복과 평화의 기원이 어디이냐 하는 것, 하나님 자신이 설정한 기원이 없을 수 없다는 거예요.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구요. 하나님의 창조가 도대체 뭐이냐? 창조는 무관심해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안 그래요? 창조할 때에는 마음 먹은 대로 되라고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마음대로 된다면 오늘날 기독교 신자가 믿듯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뭐 말로써 다…. 한번 '꽝' 하니까 세계가 생겨난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온갖 정성을 다 투입하는 데에서부터, 자체를 완전히 투입하는 데에서부터 창조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떠한 예술가가 있다면 그 예술가가 걸작품을 만드는 데 그냥 쓱쓱, 잠자다가 깨어 가지고 쓱쓱해서 돼요? 아니예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계획을 하고, 감정을 하고, 또 심사숙고해 가지고,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그려 보고, 또 그려 보고, 그려 보고 자기 속속들이 그 마음 깊은 내연과 일치될 수 있는 그 무엇을 투입해야…. 완전히 투입된 그것이 완전한 것으로 나타나야 창조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창조는 투입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투입하는 데는 뭐 70퍼센트 투입하겠어요? 그것은 안 됩니다. 완전한 것을 상대로 바라는 하나님은 완전 투입이라구요. 완전 투입이라는 거예요. 완전 투입을 하지 않으면 완전한 것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것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투입하느냐? 하나님 자신을 투입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다고 하는 것은 그저 뭐 그림 그리듯이 했다는 게 아니예요.

이런 우주의 원칙을 기원으로 하여 창조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지간에 평화스러운 가정이 형성되고, 평화스러운 사회, 평화스러운 국가, 평화스러운 세계가 미래에 전개되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여기에 참된 행복의 기원을 결정적으로 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길하고,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길하고 이 두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주체 되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피조만물과 인간 전체가 대상인데 여기에서 하나님이 '대상된 너는 하나님을 위해라' 하는 입장에 서면 창조물은 현현하지 않습니다. '창조물은 나를 위해라'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반대로 아담 창조는 하나님 자신을 투입함과 동시에 아담 해와를 위하는 데서부터 이상적 현현의 기원이 설정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우주의 근본 원리와 참된 기원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위해서 존재하는 데에서부터, 위해서 존재하는 데에서만이 참된 사랑이 성립될 수 있고, 위해서 존재하기 시작하는 데에서만이 이상이 성립될 수 있으며, 위해서 움직이는 데에서만이 평화나 행복이 있을 수 있지, '나를 위하라' 하는 데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주 창조의 원칙적 근원을 위하여 존재하는 데에 설정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