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하나님의 축복의 최대의 소망은 무엇이냐 1960년 04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5 Search Speeches

효자 효녀의 기반으로 닦아지" 충신의 길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손을 들어 아담 해와를 축복하실 때에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로서 마음으로 무엇을 소망하셨을 것인가? '오! 너희는 내가 지은 대천주를 품고 나를 왕으로 모시고 충신이 되어달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마음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아담 해와는 이 천지간에 충신의 지조를 세우고, 그것을 억천만년 전통으로 남겨야 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참아버지로 모신 참다운 효자효녀가 되었던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세운 충효지절은 전통이 되었을 것이고, 이 땅의 역사는 하나님과 아담 해와의 연결된 심정을 중심삼고 이어져 내려왔을 것입니다. 그러면 악이 주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의 세계를 악이 주관할 수 있다면 복귀역사, 구원역사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어느 누가 무엇으로 사랑하는 자식을 '내 자식이 아니다' 하고 거부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참부모로 모시고, 효자 효녀로서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었던들, 오늘날 이 땅은 절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충신지절을 잃어버렸고 효자 효녀의 지조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들은 거꿀잡이로 신랑 신부라는 명사를 걸어 복귀해 나오는 것입니다.

원래 신랑이 되려면 먼저 충신지절을 세워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이 되고, 부모를 사랑하는 효자가 된 후에야 하나의 남자로서 신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했으니 거꿀잡이로 하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이 이렇게 거꿀잡이 노정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신랑 신부라는 명사에 도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신랑 신부가 되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을 참부모로 모시는 데 있습니다. 신랑 신부의 사랑만 가지고는 안 돼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가정적인 하나님말고 대천주를 주관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부모와의 정의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한 부부의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한 주권자의 인정을 받는 것이 인간들의 생활윤리입니다. 철칙이 그래요. 나라없이 가정이 있을 수 없고, 가정 없이 부부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 인류는 신랑 신부라는 명사 앞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늘이여! 주님은 신랑으로 오신다는데, 신랑보다는 나를 다시 낳아줄 수 있는 참부모를 보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랑 신부의 사랑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나는 효자 효녀로서 아버지를 모시겠나이다' 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만왕의 왕으로 모실 수 있는 충신의 무대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무슨 구원? 지옥가지 말게 해 달라는 구원입니까? 지옥이 무서워서 예수를 믿어요? 구원의 목적은 신랑 신부로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탄식이 무엇인가? 하늘이 충신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천적인 주권의 나라가 못 된 것입니다.

하늘이 공인할 수 있는, 타락의 혈통을 벗어난 본연의 아담 해와가 없기 때문에 참부모를 잃어버렸습니다. 심정적으로 우리를 지켜줄 참부모를 잃어버렸으니 사탄이 우리를 유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아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