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집: 지도자의 갈 길 1971년 08월 17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240 Search Speeches

대상적 실체 절대자가 되어야 할 통일교인"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에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 믿어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믿으라고 하는 데 그 이유가 뭐냐?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구요. 구원은 사탄과 싸워서 이겨야만 얻는 것이지 사탄과 싸우고 있는 입장에서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강조한 말이냐? 우리의 개인구원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보다도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요구가 있기 때문에 '믿어라'고 한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적인 신앙, 모범적인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6천년 동안 하나님을 참소하고 하나님을 골탕먹이던 능란하고도 노련한 사탄을 굴복시키는 일은 우리 인간 자체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믿는다 해도 인간만 믿는 것 가지고는 능구렁이 같은 사탄, 6천년 동안 하나님을 유린해 온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도의 노정을 따라 완전히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잘 아는 바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종이요, 오늘날 구원받기를 원하는 인간은 아들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인간이 아들로서의 책임을 했다 하는 자리에서 종을 종으로서 백 퍼센트 부릴 수 있고 관리할 수 있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즉 구원은 뭐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탄과 대결하고 있는 입장에 선 것이 오늘날 신앙의 길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러한 신앙길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강조한 것이 뭐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으니 절대적으로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시니 그 하나님을 믿는 너희들도 전능할 수 있다는 마음 바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동요없이 죽음의 고비도 넘어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이 거기에 작용을 해 가지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타락하지 않았을 때의 아담 해와를 주관하던 본심적 심정의 작용을 다시 일으켜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기 때문에, 사탄은 거기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탄이 굴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을 굴복시키는 일은 우리 자신들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써 타락하지 않은 완성권내에 설 수 있는 인연의 조건을 세우게 될 때, 내심으로 하나님만을 절대시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아담이 하나님을 절대시하지 않는 자리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자리에 서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아담 해와보다 더 나은 자리에 선 것으로 인정을 하시어 우리를 간섭해 가지고 사탄과 대결할 수 있는 발판을 조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본심을 작용시켜 가지고 거기에 강력한 힘을 투입시켜 우리에게 사탄을 대해 당당코 나설 수 있는 제2의 신념을 갖게 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은 우리 앞에 더 이상 대립하지 못하고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무조건의 신앙을 강조하는 것은 무조건 구원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늘날 기성교회의 신앙태도는 무조건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식입니다. 말은 맞는 말입니다. 무조건 신앙하면 구원 얻기는 얻는데, 무조건 신앙해 가지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탄과 싸워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믿으면 구원 얻지' 이러고 있어요.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조건 믿으라는 말은 뭐냐?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옛날 아담이 타락할 때,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한 기준을 넘어선 인연을 갖춘 자리에 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작용해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킬 터전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탄을 굴복시켜 가지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 놓고서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성교회 신앙은 사탄이야 있건 없건간에 무조건 믿으면 구원 얻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에 있어서 근본적 차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조건 믿더라도 사탄을 굴복시켜야 구원의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것이고, 사탄을 굴복시킨 승리의 실적을 가져야만 천국 갈 수 있는 것이지, 무조건 믿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결국 문제는 뭐냐? 하나님이 협조할 수 있는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갓입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한 것은, 우리 인간이 너무나 타락하여 하나님이 상대할래야 상대할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짐으로써 마음으로라도 타락하지 않은 자리에까지 올라올 수 있는 상징적인 절대기준이라도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신앙을 요구해 오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상징적 절대기준만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실체적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상징적이 아니라 대상적 실체 절대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이 다른 거라구요. 하나님이 절대자라면 그 절대자 앞에 우리는 대상적 실체 절대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믿음을 초월한 자리입니다. 사탄을 굴복시킨 자리입니다. 그렇쟎아요? 절대적 하나님 앞에 참소할 자가 어디 있으며, 절대적 하나님 앞에 대립할 자가 어디 있느냐?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자, 상대적 실체 절대자의 자리에 선 사람도 어느 누가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절대적 상대의 입장에 선 사람을 누가 참소하겠어요? 세상의 예를 두고 보더라도 남편 있는 여자에게 누가 이러고저러고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적 상대, 상대적 절대자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입니다. 여러분이 절대적 실체 기준을 가진 입장에 섰다 할진대는, 하나님 앞에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도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되고 지상에 천국이 전개될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남겨 놓고는 지상천국을 이룰 수 없습니다. 천국은 커녕, 오히려 천국을 이루기 위한 싸움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망치는 사탄이 있으니, 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할 싸움이 남아 있는 것이지 천국생활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상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절대적 대상실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이 참소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상에 살더라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실천자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탄과 싸우는 자리에서 천국이 이루어져요? 그 자리는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싸우는 자리지 천국이 이루어진 자리는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