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7집: 생사에 대한 이해 1998년 12월 19일, 미국 워싱턴 타임스사 Page #254 Search Speeches

죽음과 싸워 승리할 수 있" 소망

여러분! 세상만사는 다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가정도 지나가고 국가도 지나가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혹은 어떤 주의나 사상도 다 지나가고 마는데 최후까지 남아져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죽음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소망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적인 모든 소망 일체를 거부하고 인간세상의 소망이 아닌 하늘의 소망, 즉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늘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땅 위의 어떤 소망을 품고 살 것이 아니라 죽음의 고개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고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꿈꾸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죽음에 대해 점점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도, 이 자리에 서 있는 레버런 문도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이처럼 죽음이라는 것은 운명의 관문입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죽음이라는 낱말을 쓴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삶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가치는 누가 잘 압니까?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모릅니다. 죽을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생사의 기로에서 하늘을 붙들고 삶의 가치를 타진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그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죽느냐 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에서도 가장 첫째로 묻는 질문이 인생이 무엇이며 인간은 왜 태어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로 태어나는 것인데 인간세계에서는 '아이구 죽는다!' 하고 아우성입니다. 그것을 보는 하나님께서는 껄껄 웃겠습니까 아니면 '우우!' 하고 놀라 슬퍼하겠습니까? 기뻐하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제한된 지상의 사랑권 내에서 무제한의 사랑권 내로 돌입할 수 있는 기쁨을 맞는 순간이 육신이 죽는 순간 즉, 제2의 출생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육신세계에 태어난 날을 더 기뻐하겠어요? 아니면 제2의 무한 확대세계 사랑을 위해 육신을 벗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아들로 태어나는 그 시간을 더 기뻐하겠어요? 물론 후자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여러분이 죽음의 공포에서 해탈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기로 태어나서부터 오줌 똥 싸면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시고 또 직접 참여하시면서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아기가 성장함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에 움직이는 사랑의 박자도 그로잉 업(growing up;증대하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시늉을 하면 아이들도 같이 시늉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웃으시면 아이들도 같이 웃고, 슬퍼하시면 같이 슬퍼하면서 이렇게 점점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또,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부모들의 모습을 닮게 됩니다. 말도 배우고 생활규범도 부모들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함께 이 지구성에 살고 있다가 저편으로 휙 날아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아이구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한다면 '이놈 너 누구야?'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떼어버리시겠어요? 아니면 함께 데리고 가시겠어요? 물론 데려 가시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지금은 데리고 갈 수가 없으니 너는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완성이 된 후에 데리고 가겠다.' 할 때에 인간은 '우리도 지금은 못 가지만 언젠가는 갈 때가 오겠구나' 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사는 동안은 인간은 하나님을 항상 따라다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