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집: 주가 가신 길을 본받자 1959년 04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81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소원

그러면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도 소원하신 것은 무엇이었던가. 자신의 몸이 희생되는 것을 개의치 않으시고 오직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그의 소원이요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생명체를 이루어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날 우리들이 찾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구하고 두드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2사도를 세워 모세가 세워 놓은 12지파의 권한을 그대로 상속시켰어야 했는 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슬픔이었습니다.

또한 살아서 하늘 앞에 구하여야 할 예수님께서 그러지 못하셨고, 살아서 하늘을 찾아야 할 예수님께서 하늘을 찾지 못하셨고, 살아서 하늘로 향한 문을 두드려야 할 예수님께서 하늘로 향한 문을 두드리지 못하셨으니, 끝날의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는 살아서 예수님께 구하여야 할 때가 옵니다. 살아서 예수님을 찾아야 할 때가 옵니다. 살아서 예수님의 심정의 문을 두드려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도 이것이며 예수님의 소원도 이것입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떨어졌으니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려면 먼저 사도의 문을 두드려야 됩니다. 이제는 전세계 기독교인들 앞에 예수님 당시 쓰러져간 사도적인 모습이 나타날 때가 왔습니다. 전세계 기독교를 수습하고 12지파의 대표형을 갖추어 나설 수 있는 세 사도의 모습이 나타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사도 중의 사도요 제자 중의 제자인 이 세 제자는 동쪽 문을 대신하였습니다. 하늘은 천국문을 상징하여 동서남북의 각각 세 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동쪽의 세 문, 남쪽의 세 문, 서쪽의 세 문, 북쪽의 세 문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중심한 세 제자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동쪽의 문이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기독교는 베드로적 기독교, 야고보적 기독교, 요한적 기독교로 상징되는 데 구교는 베드로적 기독교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을 상징하고 야고보는 소망을 상징하며 요한은 사랑을 상징합니다. 종적인 기독교 역사는 베드로적 기독교, 야고보적 기독교가 나왔는 데 야고보적 기독교가 신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