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집: 풀어놓고 풀어놓아야 할 하나님의 뜻 1959년 06월 1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5 Search Speeches

개방운동을 해오신 하나님의 섭리와 오늘의 '상

풀고 풀어야 할 하나님의 뜻. 이런 하나님의 뜻이 역사를 개방시키는 일이라 할진대, 역사적으로 관찰해 보면, 과거의 모든 주권형태는 개방운동을 통해 점점 무너져왔고 이 시대에 와서는 민주주의 형태까지 개방운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늘은 중세시대에는 농노를 해방시키고, 그후 봉건사회를 개방시키고, 군주국가를 멸망시켜, 오늘의 민주주의 형태를 이루어 나옵니다.

그런 가운데 하늘은 전체가 국가를 대신하고, 전체가 세계를 대신하고, 전체가 이념을 대신하고, 개체가 전체를 대신할 수 있고, 전체가 개체를 대신할 수 있는 , 전체가 개체를 무시할 수 없고 개체가 전체를 능히 대할 수 있는 그러한 기준을 향하여 개방운동을 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역사적인 방향과 상응되는 방향이 아니라 상반되는 방향으로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종말시대인 오늘날 2대 조류가 대치하고 있는 데, 그 하나는 공산주의요 하나는 민주주의입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적인 실증으로 보아 민주진영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옹호하는 기반 위에서 움직이는 진영입니다. 그러면 공산진영은 무엇이냐. 외적인 것, 즉 물리적인 기반 위에서 움직이는 진영이요, 심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 우리 인간 세계에서 용납할 수 없는 , 우리와는 반대적인 입장에 있는 진영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면서 쌍방이 세계적인 개방운동을 표방해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표준에서 쌍방이 개방운동을 표방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두 진영이 부딪치게 될텐데 그때에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어떤것이 정(正)인가 부(否)인가 반(反)인가 하는 것이 판단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가치를 논하게 될 때에 그 외적인 모양이 잘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가치를 평하게 될 때에는 무엇을 중심삼고 평하느냐. 그가 갖고 있는 사상과 양심기준입니다.

그리고 그 사상과 양심기준에 심정문제가 어느 정도까지 개재되어 있는 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을 논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인격도 그렇거니와 주의 사상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외적인 형태만으로 이념을 세운다 할진대 인간은 그것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외적인 것에만 만족할 인간은 절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느낄 때도 내적인 행복의 기준을 세워 놓고서야 외적으로 행복하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기반으로 하고 오늘의 현실사회를 토대로 한 주의와 사상은 최고의 선을 향하여 움직이는 인간을 대해 그들이 소개할 바, 그들이 연결지을 바를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신을 인정하고 신의 움직임에 따라 양심을 움직이고 이 양심을 기반으로 주의와 사상을 제창해야 합니다. 평화와 행복, 사랑을 앞세워 무조건 봉사하고 무조건 희생하는 본질적인 요소를 지닌 이러한 주의와 사상을 갖지 않고는 , 양심을 통해 선을 자동적으로 감촉하고 자동적으로 체휼하지 않고는 우리 인간 세계에서 행복의 조건을, 행복의 이념을, 행복의 주의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아는 바입니다.

역사는 흘러 민족주의 사상은 지나갔고 지금의 때는 세계주의 사상이 전체를 대신하여 설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이 세계는 어떠한 기구나 어떠한 대표적인 인물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 형태, 평등한 입장에서 만민이 이 세계는 내 것이야, 주권도 내 것이야, 이념도 내 것이야 할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이런 경지까지 나아가도록 역사를 개방시켜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섭리해 나오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돌이켜 보면, 시대의 조류와 상반된 위치에서 내적인 면에서 섭리해 나오십니다. 각각 다른 민족이지만 전체가 움직일 수 있는 선의 방향을 세워 민족을 단결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민족과 민족이 움직일 수 있는 중간적인 새로운 종교 형태를 갖추어서 민족과 민족을 규합시켜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천적인 섭리의 뜻을 대표할 수 있는 , 하늘의 섭리 앞에 나설 수 있는 어떠한 종교가 있다 할진대 이는 오랜 인류 역사의 전통적인 기준과 더불어 역사적인 모든 기준과 시대적인 환경과 더불어 앞으로의 소망적인 이념에 응하여 나갈 수 있는 내용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각 종교를 살펴보면 어떠한 종교보다도 기독교가 더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종교입니다. 연면한 전통을 갖고 있는 동시에 섭리의 뜻을 대신한 이 기독교의 역사는 인류역사의 움직임에 있어 변혁 혹은 혁명과정을 거치면서도 연면히 계속되어 오늘의 시대도 움직일 수 있고, 미래의 소망의 기반도 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역사가 발전하고 진보함에 따라 인간이 고취하는 주의와 사상, 혹은 민족적인 모든 전통도 변혁해야 되겠기에 섭리의 뜻을 대하는 모든 종교인들에게는 세상과 인연 맺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시대적으로 보면, 외롭고 형편없이 불쌍한 자리에 그들이 처한 것 같지만 역사를 알고 변혁해 나오시는 하나님 편에서는 그렇게 막고 이끌어 나오는 것이 도리어 사랑인 것입니다.

과거 구약시대에는 법도를 통하여 하늘 앞에 나아가게 했고, 신약시대에는 인격을 표방하는 믿음을 통하여 하늘 앞에 나아가게 하는 섭리를 해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시대가 끝났듯이 앞으로 주님이 다시 오시면 신약시대도 끝이 납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도 최후에는 개방적인 역사관을 포섭할 수 있는 형태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를 보면 기독교를 위시하여 불교, 유교, 회회교가 있는 데 이것을 어떻게 터뜨릴 것이냐 하는 것이 앞으로 하나님의 섭리 프로 가운데 중대한 문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