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집: 위해서 존재하는 세계 1974년 11월 27일, 미국 시애틀 Page #52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위하라" 원칙을 세우신 이유

자, 그러면 왜 하나님이 위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하는 것을 몇 가지 조건을 들어서 말해 보자구요. 나 하나 물어 보자구요. 여러분들은 다 본심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본심으로 볼 때, 어떤 사람이 진정 희생적인 입장에서 여러분을 위해 생명을 다한, 그런 여러분이 은혜를 입은 일이 있다면, 그 은혜를 갚는 데는 백 퍼센트만큼 은혜를 졌으면 한 50퍼센트는 지갑에 집어 넣고 한 50퍼센트만 갚고 싶어요, 백 퍼센트 이상을 갚고 싶어요? 우리의 본심이 어떠냐 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이 한번 대답해 보라구요. 여러분들은 더, 더…. 그게 사실입니다.(박수)

자, 보시라구요. 여기에 미스터 박에게 내가 진정으로 백 퍼센트의 은덕을 입혔으면, 그는 진정 본심으로 백 퍼센트 이상, 백 십 퍼센트를 나에게 돌려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정으로 돌려주는 것을 내가 받게 될 때, 나는 또 거기에 백 십 퍼센트 이상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나는 것이요, 또 저기서는 진정 그와 같이 더 받았으면 더 이상 보내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결과가 빚어짐으로 말미암아 여기에는 영원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에,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이 참으로 위대하시다는 걸 우린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위하는 그 자리에서만 영원함과 동시에 번창과 발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둘째는, 왜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우주를 위해 존재하는 분이기 때문에, 위하여 존재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중심적 존재가 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위하여 존재한다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선거하는 데도, 도시면 도시, 시애틀시면 시애틀시의 시장을 뽑게 될 때, 시애틀시를 보다 위해서 산 사람을 뽑는 것이 원칙이고, 미국 대통령을 뽑는다면 어느누구보다도 미국을 위해서 산 경력이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원칙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왜 중심존재로 쓰느냐? 천리원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제도를 우리가 적용하는 것도 원인이 거기서 유래됐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여덟 식구가 있는데 맨 막내가 그 형제보다도 부모를 더 위하게 된다면, 부모도 그 꼬마를 중심존재로 세우고 형님들도 그 꼬마를 중심존재로 세우고, 자동적으로 중심존재로 세우는 사실을 볼 때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안 그래요?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미국 젊은이들, 오늘날 소위 자기가 안다는 지식층에 있는 청년들이 남을 위해 사는 것을 수치로 아는 이런 사실은 이와 같은 천리원칙을 몰랐기 때문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나나 우리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의 중심자도 그러한 사람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중심존재 앞에 주관받는 것이 수치가 아닙니다. 오늘날 주관하면 아주 머리 아파하고 누구든 다 싫어하지만, 천만에요. 진정 자기를 위해서 희생하고 자기를 위해서 선 중심 앞에 주관받는 그 행복이라는 것을 오늘날 인간들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천국에 가게 되면…. 하나님이 그러한 우주의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면 그분 앞에 주관을 받는데, 그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여러분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음, 세번째 이유는 무엇이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 하면 그 사랑을 내 사랑으로 알고, '이상' 하면 우리들의 이상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랑이 나로부터 오고, 이상이 나로부터 온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를 통해서 오기 때문에, 사랑과 이상은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기원이 되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고귀한 것을 우리가 이어받기 위해서는 겸손히 머리 숙이고 위하는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원칙인 것을 오늘 저녁 여러분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상대가 없으면 사랑이 있을 수 있어요? 상대 없이 이상을 찾을 수 있어요? 이러한 생명보다 귀한 것이 상대로 말미암아 찾아오기 때문에 이 가치를 존중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대를 위하는 데서만이 그 상대로부터 이와 같은 참된 사랑과 이상을 무조건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