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집: 금후의 우리의 자세 1975년 01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9 Search Speeches

"책임자의 자리" 고독한 자리", 전체가 필"한 자리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고독을 느낄 것입니다. 직장을 가면 직장에서 '나만 남았나이다' 나라면 나라를 대표하고 설 때에는 '나만 남았나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져야 됩니다. 나 하나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생활을 통해 느끼는 그 신경 자체가 그 하나에 일치되어야 됩니다. '나만 남았나이다, 하나님이 그러하듯이 나도 그러하고, 당신이 6천 년동안 홀로 남은 자신을 지니고 나왔던 거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시대에 있어서 나만 남았나이다. 그 안팎의 모습에 있어서 나는 짧은 생애지만 같은 입장에 섰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동정하고 당신은 나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습니다' 하는 것을 절감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나만 남았다는 그 자리는 횡적으로 연결되지 못했지만 비로소 종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이 결정되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구요. 그 책임을 나 혼자만이 짊어진다, 나만이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내 손이 가야 할, 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 그 책임을 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손을 벌리고…. 손은 하나인데 열 손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제 나만 남은 여기에서 해결하려니, 오는 사람이야 어떻든. 몰골이야 어떻든 손이 필요하니 그 손을 위해서는 내 생명을 대신하듯이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일을 향해서 가는 자리는 고독한 자리요, 환경을 대해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자리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저 사람도 내게 필요하고 이 사람도 필요하고….

살림을 하려면 별의별 것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걸레 짜박지까지 필요하거든요. 안 그래요? 신던 버선 짜박지까지도 필요하다는 거예요. 내버려 두면 개도 안 물어 갈 것이지만, 구멍이 뚫어졌으면 그것으로라도 막아야 되는 것입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런 것을 느껴야 됩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발견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앞에 기도할 때는 심정으로…. '아버지' 할 때는 그것이 말뿐인 아버지가 아닙니다. 골수로부터 자극이 느껴지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불러야 됩니다. 느끼는 감각을, 모든 환경을 전부 필요한 것으로 소화시키고 풀이면 풀로 이겨서 바를 수 있는, 그런 감정적인 굴곡을 다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많이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래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사람은 누구냐?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해요. 하늘 앞에 세계적인 사명을 책임해야 되는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제일 고독한 사람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그 생활 내면에는 눈물이 어리어 있는 것입니다. 웃으면 웃음으로 시작하고 웃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고독한, 천정(天情)에 어린 눈물로부터 웃음의 고개를 지내 가지고 눈물로써 평지를 이어 나가는 그런 길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껴야 됩니다. 그러한 것이 본질적 신앙생활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누구보다도 제일 약한 자리에서 제일 큰 분을 의지하는 나, 환경을 대해서는 큰 자리에서 전체를 의지하게 해야 하는 나. 그러한 자리에서 개인의 문제를 책임지고, 가정의 문제를 책임지고, 혹은 국가의 문제를 책임지고, 세계의 문제를 책임지며 사방으로 들어오는 압력과 그 위압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을 잘 느껴야 됩니다.

그 위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내 자체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늘의 힘을 가중시켜 가지고 평균적인 압력권을 만들 뿐만이 아니라 제압할 수 있는 압력권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그야말로 신경을 쓰는 그런 생활을 연속시켜야 될 것입니다. 내가 그러한 것을 느꼈다면, 그것이 역사 이래 그런 생활, 뜻을 섭리해 나오시는 아버지의 입장이 아니냐.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책임자는 판정을 많이 합니다. 결정을 많이 합니다. 그 자리는 지극히 외롭다면 외롭습니다. 지극히 외로운 자리입니다. 자기가 하는 하나의 판정에 회사면 회사, 나라면 나라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아도 돼요? 지극히 고독한 자리입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자리야말로 지극히 믿고 싶은 자리라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사실에 대한 소식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귀를 맑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차원의 길을 높여 가면서 가는 것입니다. 신앙길에 있어서 책임을 진 사람은 그럴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직까지도 저 가장자리에 묻혀 돌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밤이 되어도 그만이고 낮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와도 그만이고 이건 뭐 아무래도 그만이라는 거예요.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같은 양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생각하기를 '나만 남았나이다' 했을 것입니다. 4천 년 동안 바라 나온 이 민족 앞에 '나 하나 남았나이다' 그러면서 내 뜻대로 마시라고 했습니다. 내 뜻이 무엇이냐? '전부가 필요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이 민족 전부가 내게 필요합니다. 아무리 죄를 범하고 아무리 못되었지만 이들도 내게 필요합니다' 죽는 자리에서도 '그 원수들은 내게 필요합니다' 한 것입니다. 이런 심정의 자리에 여러분들이 들어가면 그건 대번에 이해할 수 있다구요. 하나의 걸레 짜박지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커지고 세계적으로 환영받는다고 해서 좋아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수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난 사람 잘난 사람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의 인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영양소, 천만의 영양소가 필요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체가 자라기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기 때문에 이제부터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눈을 똑바로 떠야 됩니다. 눈을 똑바로 떠야 되겠다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