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집: 필연적인 길 1972년 09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38 Search Speeches

절대적 주체 앞- 절대적 상대가 되기 위해 "구되" 절대복종

본래 우리 인간은 기쁨으로 와서 기쁨으로 살다가 기쁨으로 죽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원칙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권내에 들어왔더라도 기쁨으로 감사하고 살다 가야만, 하늘과 더불어 그럴 수 있어야만 천국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필연적으로 찾아가야 할 길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옵소서' 해야 합니다. 내 몸과 마음이 갈라져 가지고 역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던 투쟁의 역사는 지금 내 가슴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

바울이 말하기를 마음의 법과 몸의 법, 둘이 서로 싸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이 싸움에서 누가 나를 구해주리오' 하고 탄식을 했다구요, 바울까지도. 예수님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도 그 싸움에서 정신을 똑똑히 차리고 싸웠던 거예요. 예수님도 사람이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몸도 굴복하고 마음도 굴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체적인 사랑을 가지고 절대적인 상대적 입장을 취하려니 내 뜻 말고 하나님의 뜻을 강조했던 거예요.

다시 말하면, 남편만을 위하는 아내는 없어진 것 같지만 남편을 싸우지 않고 점령하게 마련입니다.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자기 아내에게 명령하고 교육하지 않더라도 남편이 끝까지 아내를 위하려 할 때는 그 아내는 그 남편을 위하지 말라고 해도 더 위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도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왜 싸웠던가? 거기엔 '나'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이 타락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 '나'라고 하는 자각 때문입니다. 자체 자각을 한데서부터 타락한 것입니다. 자체 자각이 남아 있는 여자는 시집가더라도 남편하고 하나 못 되는 것입니다. 주체 자각을 자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체 자각을 부정해 놓고 하나님을 중심한 주체 자각을 해야 됩니다. 나는 상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적 자각을 부정하고 주체적 자각을 하는 데서부터 새로운 인간의 복구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심전(心田)을 계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돼 있다구요.

효자는 무엇이냐? 절대적으로 부모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충신은 뭐냐? 군왕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열녀는 뭐냐? 남편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거기에서부터 이상(理想)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주는 사람,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받고 있는 사람….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입장에 계시느냐? 지금까지 주체적인 입장에서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일해 나오신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일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요, 그렇기 때문에 주체인 것입니다. 언제나 주체인 것입니다. 그 주체를 주체로 모시기 위해서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절대적인 상대가 되려니 절대복종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저기압권이요, 절대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비법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하오?' 하고 물을 때, '아이고 사랑하지. 세계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지. 그렇지만…' 할 때는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에서 요만큼 남아 있어' 할 때는 기분 좋겠어요? 요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주체가 되어 있다구요. '요만큼만 남아 있어' 할 때는 지금까지 좋다는 것이 도리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있어라. 절대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살아라. 그래서 남자가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상대를 위해 태어난 거라구요.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거라구요. 여자가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남자가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이런 점에서 볼 때, 모든 존재는 자기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모든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