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집: 솔직한 신앙자 1971년 07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2 Search Speeches

신앙의 전통

내가 청평에 가게 되면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산에 올라갔다고 소문납니다. 그리고 나한테 관심 있는 사람들은 내려왔나, 안 내려왔나 확인까지 하는 거예요. 자, 이거 거북할 때가 많습니다. 영감이 잘나서 영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영감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옛날에 개망나니 노릇을 했던 사람도 손자들이 많게 되면, 그 손자들 앞에서는 아주 점잖은 선군 모양의 태도를 취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이 그렇게 되니까 거북할 때가 많다는 거예요. 어떤 때는 좋지 않다는 거라구요. 그 발랄하고 말이예요. 점심 때가 되면 주먹밥을 해 가지고…. 그릇이 필요 없다는 거라구요. 솥이면 솥에다 냄비면 냄비에다 밥을 잔뜩 해 가지고…. 반찬이 없으니까 할 수 있어요? 무럭무럭 김이 나는 데다가 손으로 쓱쓱 소금을 발라 가지고 한 덩이 해서 '먹자!' 이래 가지고 꿀꺽…. 할아버지 손, 할머니 손, 아빠 손, 엄마 손, 고운 손, 미운 손 할 것 없이 한 덩이 집어다 쭈벅쭈벅, 들고 그저 된장이나 고추장에 척 찍어서 이렇게 먹는 것이 제격이라는 거예요. (웃음) 그게 좋긴 좋다는 것입니다. 개척시대에는 그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 이거 차도 타고 다니는데 밥은 어떻게 먹나 한번 가 보자 하고 와서 선생님 밥 먹는 것을 보고 어떻구나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걸 보게 될 때 이름난 책임자는 구속이 많다는 것입니다. 눈을 깜박해도 왜 깜박하느냐고 그럽니다. (웃음) 여자들을 보고 점심 때가 됐으니 점심 해 오라고 내가 눈을 깜박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별의별 이상한 생각을 다 합니다. 이것은 비정상적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내가 어떤 때는 공석에서 욕을 잘합니다. 내가 욕을 함으로 말미암아 손해나는 것보다도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수백 명 앞에 세워 놓고 욕을 하면 말이예요. '선생님이 저렇게 욕을 하시는데 얼마나 분하면 저러실까'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참고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한 사람이 제물됨으로 말미암아 나머지 수백 명이 욕 안 먹을 수 있게 된다면 당당히 욕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처음 온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공석에서 무슨 욕을 저렇게 하느냐? 라고 생각할 거예요. 욕을 하려면 멋지게 해야지요. 칭찬하는 것은 욕이 아니예요. 그저 눈에서 눈물이 쑥 나오도록, 가슴이 섬찍하도록 해줘야 멋진 욕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잘못을 탕감해 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죄수를 재판할 때, 검사가 형법 몇 조에 의해서 몇 년 징역을 구형하지만, 판사는 그 사람이 애국심이 있다든가 효성심이 있다든가 하는 변호사의 변론을 참고로 해 가지고 언도하잖아요? 판사는 형벌을 감해 줄 수도 있고 집행유예도 내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죽을 녀석이지만, 그 녀석 자체에 동정의 여지가 없다 할 때는 내가 욕이라도 해서 동정의 여지를 만들어 가지고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선생님이 공석에서 욕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유 협회장은 통일교회 충신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는 부려먹더니 죽은 다음에는 상은 못 주나마 욕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와 유 협회장과의 사이를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다년간 같이 일을 해 나왔는데 모든 것이 백점일 수 있어요? 그래서 잘못한 것을 청산해 주기 위해서 공석에서 욕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정치적으로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슬쩍슬쩍 선생님을 속여 가지고 이중 삼중으로 생활하면 전부 다 나한테 걸려 넘어간다는 거예요. 좋다 좋다 하면서 잘못했다가는 난데없이 걸려 넘어지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해 나오신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이 그것을 얼마나 잘 아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핏대를 세우고 기분 나쁘게 되면 전체에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한 사람은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동기와 인연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수습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병폐가 되어 가지고 전체에 폐단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누가 해결하겠느냐 이거에요. 여러분이 그것을 하지 못할 때는 선생님이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럴 때는 뿌리를 뽑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욕을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볼 때, 어떤 일을 하든지 거기에는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하는 데 있어서도 그 일하는 목적을 중심삼고 볼 때에…. '그저 일하라니까 하지, 그저 오늘 밥 먹었으니 땅 파라니까 파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땅을 파는 데는 무엇인가 있어야 돼요. 조국을 창건하기 위해서 한다든가…. 생각이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입체적으로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하늘이여, 제가 피땀 흘리는 것을 삼천 만의 피땀을 대신한 것으로 탕감해 주십시오' 하면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신앙생활에 있어서 전통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중심삼은 기준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기준 밑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다음에 아들딸에게 유언을 하더라도 '야, 아들딸들아, 너희도 나와 같이 나라에 충성하라'고 하려면 보여 줄 것이 있어야 합니다. '나와 같이 남을 위해서 선을 행하라'고 하려면 보여줄 게 있어야 합니다. 보여 줄 게 없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할 수 있는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자타가 공인하고, 자타가 추앙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입장에서 자식들에게 얘길 해야 자식도 공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