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집: 답답하고 민망하신 예수 1960년 07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67 Search Speeches

심정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오늘날 믿는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뇨? 땅 위의 수십 억 인류를 대표한, 예수님이 진정코 사랑할 수 있는 그 한 분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한 분은 복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함으로써 예수님이 백 퍼센트의 심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예수님이 마음으로 어떤 이념적인 세계를 고대하고, 어떤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더라도 그것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섬으로써 예수님이 마음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심정으로 기뻐하고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을 못 본 것은 물론이로되 몸으로 기뻐하는 사람도 보지 못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살다 가셨어요? 몰림뱅이. 눈물장이였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살아 생전 하늘 앞에 기도해야 할 것은 `주님이 한을 남기고 가신 것을 알았사오니 당신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을 이 땅에 보내 주시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백 퍼센트 지니고 하나님과 만물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모습으로 만민앞에 세워지기를 바라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신이 되지 못하면 그러한 사람을 보고라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겠다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됩니다. 그런 마음도 갖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와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한과 하나님의 한을 해원하기 위하여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비록 몸은 작으나 마음은 천주(天宙)를 넘고 넘어서 천성(天城)의 길을 꿰뚫어 하나님의 마음과 연락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몸으로 안 되면 마음으로 심정의 예수님을 모신 후에 다시 몸으로 모셔야 하겠습니다. 그러지 못하는 자는 앞으로 주님이 오시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기 전에 최후로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내가 하나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하고 하셨습니다. 하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몸이 아버지의 것이요, 내 마음이 아버지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내 심정까지도 아버지의 것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몸으로 쓰러져 간 예수님을 생각하고 슬퍼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몸에만 못이 박힌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도 못이 박혔습니다. 몸에 못이 박혀 피를 흘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애석하게 우는 것보다 마음에 못이 박혀 마음으로 피를 흘리는 예수님을 더 애달프게 여겨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인류와 더불어 살기 원했던 사랑의 심정이 아팠다는 것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한스러워했던 예수님, 답답해했던 예수님, 민망스러워했던 예수님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십자가를 붙들 줄도 알고, 피 흘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애석해하며 울 줄은 알되, 그렇게 피가 흘러 넘칠 때까지 져야 했던 심정의 십자가는 모르고 있습니다. 사정의 십자가는 모르고 있습니다. 소원의 십자가는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못박힐 때에 몸과 더불어 마음에도 못이 박혔거늘, 그 마음의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심정의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기에 2천년의 역사가 지나가도록 당신의 마음의 십자가를 인류 앞에 가르쳐 줄 수 없었으며, 당신의 심정의 십자가를 인류 앞에 가르쳐 줄 수 없었습니까?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고 가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12:49-5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몸이 굶주려서 답답한 거예요? 그렇다면 40일 금식이 웬 말이며, 고난과 핍박이 웬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을 하나님이 겪고 계시다는,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보다 큰 십자가를 하나님께서 지고 계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가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영광의 주를 고대하였습니다. 호화찬란한 부활의 이념을 가지고 지상에는 7년 대환란이요, 공중에서는 어린양 혼인잔치라는 관념 속에서 지금까지 `예수님,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하고만 했습니다. 그런 신자는 강도입니다, 강도. 주님의 마음과 다른 자는 전부 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