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집: 통일교회는 탕감교회다 1966년 07월 3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0 Search Speeches

관계와 탕감

복귀노정을 걸어 가는데 있어서 자기를 중심삼고는 절대로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거기에는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남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복귀라는 것은 무엇이냐? 아벨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벨도 어떠한 입장의 아벨이 되어야 하느냐? 개인적인 입장의 아벨이냐, 가정적인 입장의 아벨이냐, 종족적인 입장의 아벨이냐, 혹은 민족적인 입장의 아벨이냐, 국가, 세계적인 입장의 아벨이냐?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민족과 이 나라를 위하여 얼마나 기도해 보았습니까? 30억 인류를 위해서 여러분의 자식들이 죽어간다는 그런 심각한 심정으로 기도해 보았습니까?

세상에 어떠한 비참한 일이 있으면 비참함을 당하는 당사자 이상의 비참한 심정을 가져 보았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계 인류를 생각하는, 그런 생활을 해 보았으며 그러한 신앙태도를 가져 보았느냐 말입니다.

여러분은 전부 다 막연하고 관념적입니다. 막연한 자리에서는 절대로 탕감복귀를 할 수 없습니다. 전후 관계를 바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구해야 되고,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을 구해야 되고, 민족을 희생시켜서 나라를 구해야 되고, 나라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구해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의 철칙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개인을 희생시켜서 가정을 구하고, 종족을 구하고, 민족을 구하고, 국가를 구하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였습니까 ?

이 문제를 놓고 볼 때 여러분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기준에 선 대표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의 대표자로, 온인류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그분을 중심삼고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심정적인 터를 닦았고, 탕감적인 운명의 노정을 뒷받침하고 혹은 수습하기에 몸부림쳤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들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뜻을 위해서 각오를 했으면 가정을 위해서, 혹은 민족을 인해서 자기의 생명을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진짜 죽을 입장에 들어가서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갈 길은 뚜렷해야 합니다.

전진하는 복귀섭리에 있어서, 종적인 탕감조건과 횡적인 탕감조건의 두 가지 탕감조건을 중심삼고 전후 좌우 상하 관계를 어떠한 방법으로 처리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 여러분의 당면 문제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이상으로 이 민족을 사랑했느냐? 남편은 부인 이상, 부인은 남편 이상 나라를 더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살았느냐? 자신의 몸을 생각하는 것보다 나라를 더 사랑하고, 내 개인을 생각하는 것보다 세계를 더 사랑했느냐? 전부 다 여기에 걸려 있습니다. 전부 다 보게 되면 자기 중심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탕감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아직까지 개인의 자리를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은 세계사적인 탕감을 짊어지고 계신데 그 길을 다 가 가지고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우기전에는 개인적인 자리로 영원히 들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2천년 동안 탕감노정을 걸어 나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있는 성도들이 그 탕감노정을 걷는 책임을 다해 가지고 안식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 위의 인간들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또다시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