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집: 참된 생애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 1969년 10월 19일, 한국 대구교회 Page #121 Search Speeches

천금같은 때를 -비하" 자가 되지 말라

그러므로 7년노정 기간 전체는 그런 때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7년노정의 어느 한때에 그런 때를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한때마저도 남기지 못한 사람은 참된 생애를 남기기 위한 탕감조건적인 기준조차도 세울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생 전체를 참되게 살아야 되겠지만 그러지 못하겠거든 참된 조건이라도 남길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도 없다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한번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청춘시대도 한번밖에 없는 전무후무한 시기입니다. 청춘시대가 또 올 수 있어요? 장년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한번 맞이한 시대가 언제 다시 오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뜻을 중심삼고 여러분들을 보면 무책임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먹고 자고 일을 하는 일상생활 속에서 기쁨과 슬픔 등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살고 있습니까? 나를 중심삼고 사는 것 같지만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여러분의 생활이 여러분을 탄식하게 하는 요건은 될망정 살려주는 절대적인 요건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두고 볼 때, 이제는 중차대한 시점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나라의 운명, 세계의 운명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시점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은 어느 때에 이러한 운명과 인연을 맺고 판가리를 지을 것인가? 어느 때에 판가리를 지을 것이냐? 정성을 들일 때는 어느 누구도 그 정성의 기준을 메울 수 없고 그것을 떼어 낼래야 떼어 낼 수 없는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도의 길, 혹은 선의 길에서 정성들이던 그 기준을 능가하는, 그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성의 기준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이러한 의미에서 정성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7년노정을 설정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 볼 때, 참부모라는 이름은 둘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자식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그 자식도 둘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참부모, 참자식의 입장에서 세워야 할 정성의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참된 기준을 중심삼고 참된 생애노정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그것은 지나가다가 생각나면 멈추어서 처리하고 다시 지나가는 그런 자리에서가 아니라 긴장되고 심각한 자리에서 처리해 가야 할 그러한 생애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역사상에 참부모로서 정성들여야 할 그 기준을 세워야 할 이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요구하고 온 세계가 요구하고 역사가 요구하는 그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은 편안히 쉬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그런 자리에서는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온 정성을 다하여도 부족할 정성을 어떻게 다 채우느냐? 이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족함을 느끼고, 정성을 다하고 나서도 하늘 앞에 자기 면모를 내세울 때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자기 스스로를 완전히 포용해 가지고 생애를 이끌고 나가는 그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마저도 내 일신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을 완전히 실천하지 못하겠거든 하나님의 사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잘 해 놓고도 부끄러움으로 머리를 숙일 수 있고, 못하였을 때에는 머리를 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 의식까지도 망각해 버릴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 서야만 그런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을 보면, 자기가 무슨 일을 조금만 잘했으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느니 어쩌니 하며 불평들을 하는데, 자기가 해 놓고서도 오히려 칭찬받을까봐 부끄러워해야 됩니다. 칭찬을 받을까봐 부끄러워하고, 또 칭찬받으면 무한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칭찬받는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더더욱 가중된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고 온 정성을 다 기울여야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직선을 그으면 아름답게 그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애 노정을 엮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에 있어서도 선생님 자신의 일생을 중심삼고 어떻게 정성들여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통일신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생애의 3분의 2, 혹은 4분의 3을 지내버린 나이 많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머지 3분의 1, 또는 4분의 1의 생애를 중심삼고 이러한 거룩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힐 문제라는 것입니다.

흘러간 생애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때를 거의 다 잃어버린 늙은 몸으로서 어떻게 혈기왕성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과 지성을 다하여 어느누구보다도 굳게 맹세하여 나갈 수 있는 그런 때를 맞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기력이 쇠진하고 소망이 흐려진 자리에서 비로소 충성을 해야 하는 입장인 것을 원통하게 여기면서 하루를 천년으로 대신하겠다는 마음으로 남아진 생애를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부족함을 느껴야 할 나이 많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과연 그런 마음으로 살아 왔느냐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청춘시절을 참되고 의의 있게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생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일생에 해야 할 모든 정성을 투입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시련 고통을 기쁨으로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국가가 당하는 시련 고통, 세계가 당하는 시련 고통이 찾아와도 부딪쳐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화시켜야 됩니다. 그런데 그 시련 고통을 내가 참음으로써 소화시키겠다고 몸부림치며 정성들이는 청년 남녀가 얼마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한탄하는 그 길을 그들 역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볼 때에, 오늘날 여러분의 젊은 시절의 한 때라는 것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때인 것입니다. 민족을 대신할 수 있고 세계를 대신할 수 있고 자연적인 환경의 인연을 갖추고 있는, 한때밖에 없는 청춘시대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