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집: 전통을 세우자 1971년 07월 01일, 한국 남산성지 Page #211 Search Speeches

전통기반 확보" 개인-서부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 각 개개인은 하나의 개인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뜻의 실체입니다. 뜻을 대표할 수 있는 산 실체라는 것입니다. 탕감이 필요하게 될 때는 언제라도 자기 일신에서 탕감요건을 제시할 수 있는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시한 탕감의 결과로 말미암아 어떠한 승리적인 영광의 터전이 생긴다면, 그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은 뜻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복귀섭리 시대에는 중앙의 자리에 하나님이 서는 것도 아니요, 사탄이 서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제물도 인간이 되어야 되는 것이고, 영광의 실권을 대표해서 설 수 있는 존재도 인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적 기원을 가져야 됩니다. 그 전통적 기준에 선 사람은 하나님이 볼 때는 영광의 실체가 되어야 하고, 사탄이 볼 때는 최대의 슬픔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한 세상을 분립시켜서 다른 한 세상을 세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 세대를 보내고 다른 한 세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1971년도는 통일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해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통을 중심삼고 재차 수습하고 확립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에 금년 표어를 '통일기반 확보'라고 한 것입니다. 통일기반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우선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자의에 의해서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뜻이라는 모토를 세워 놓고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 뜻은 개인을 위한 뜻이요, 가정을 위한 뜻이요,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위한 뜻입니다. 그 뜻 가운데는 전부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도 아니요, 교회에서부터 출발하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통일기반 확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으로부터의 출발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 마음을 중심삼은 자기'가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복귀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창조목적의 완성을 위한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실체로 모시는 자리가 출발의 기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자기 마음이 거기에 상대적 관계를 맺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주체인 플러스를 중심삼고 내 실체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실체라는 것은 생활권을 중심삼은 실체를 말합니다. 영적 나라와 내 마음, 육적 나라와 내 몸이 하나되도록 맺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육적 세계는 사탄의 활동무대이고, 영적 세계는 하나님의 활동무대가 되어 언제나 엇갈려 나왔습니다. 이것이 복귀섭리 시대에 한의 요건으로 남아 있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할 때에 이것을 엇갈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마음권과 하나님을 중심삼고 치리받는 몸권을 마련해야 합니다. 생활권내에서 이것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데서 통일기반의 기준이 확립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일치된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면 하나의 가정적 일치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적 일치점을 가진 가정들이 삼위기대를 중심삼고 12수면 12수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종족적인 경지를 넘어 민족적인 경지에 선 입장이 되면서 하나의 전통적 기원, 통일적 기원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전통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1972년까지는 새로운 종족 편성을 해야 되겠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전통적 기반을 확립하는 것이 역사를 대표해 봐서 미급하게 될 때는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엮어 온 소망의 기준으로 현재 서 있는 전통적 기반 확립이라는 자체를 비판해 볼 때, 혹은 섭리시대를 대표했던 수많은 우리 선조들, 예를 들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같은 선조들이 뜻을 추진시켜 나오던 본의의 기준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세운 전통적 기준이 거기에 상충되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보다 높은 차원에서,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인 차원에서 그 내용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