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집: 천국을 이루려면 1985년 12월 22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04 Search Speeches

창조란 자기투입

자, 하나님은 한 분이지요? 절대자이시고 한 분입니다. 그 한 분이 완성의 기준을 자기 하나에게 두었겠느냐? 그랬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기쁨과 행복이라는 것은 혼자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도 상대적 관계를 두고 말하는 겁니다. 어머니와 자식간에 둘이 하나 되는데 행복이 있는 거예요. 평화라는 말 글자 자체는, 평평히 화한다는 자체는 벌써 상대성을 안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평화, 행복, 이 모든 말들은 독자적인 입장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상대권에서 관계를 두고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혼자서 행복하냐 할 때, 하나님에게 그렇게 물어볼 때 '그렇구 말구' 한다면 그게 문제예요. 그래 '천지만물을 왜 지었소? 이 만우주를 왜 지었소?'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고독하기 위해서, 슬프기 위해서, 어렵기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닙니다. 기쁘기 위해서예요. 안 그래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무슨 예술품 같은 것을 만들 때, 물론 공장에 나가서 일당을 받기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 넘어 가지고 거기에는 생명을 투입할 정도의 어려움이 많다구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내용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내용의 가치는 증진되는 거예요. 불어난다는 거예요.

오늘날 기성교회식으로 창조에 대해서 말한다면, 하나님이 창조할 때 말로 '이래라. 저래라' 해서 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망상적인 신앙을 가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창조라는 것은 무엇이냐? 자기 투입입니다, 자기 투입. 여러분이 예술작품을 하나 만들게 될 때에는, 그 만들어진 예술작품의 가치 기준은 그 사람의 정신으로부터, 그 사람의 모든 성심 성의로부터…. 노력을 해야 한다면 최고의 노력을 하고, 거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정열을 기울여야 한다면 최고의 정열을 기울일 것입니다. 자기의 최고를 투입할 때 자기가 생명시할 수 있는 물건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되어지는 사실을 보고 잘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모든 창조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투입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이 인간이 얼마나 신비로워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신비로운가를 알아야 돼요.

어떤 때는 밥을 한끼 못 먹었다고, 배고프다고 탄식하고 저주하고 원망해요. '이놈의 세상, 한된 세상, 망할 세상'이라고 한탄하면서 자기를 걸고 저주하는 거예요. 인간은 4, 5일 동안 밥 한 그릇도 못 먹었다고 고통에 부딪쳐 가지고 저주하고, 불평할 수 있는 그런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이거예요. 여러분 그거 생각해 봐요.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얼마나 커요? 여러분 부인네들이 댁에서 다루는 접시만큼 커요? 가치가 얼마나 크냐?

그걸 모르겠으면 여러분, 양심을 봐요. 아무리 작은 사람이라도 양심은 다 갖고 있어요. 양심은 다 갖고 있어요. 그 양심이 얼마나 크냐? 여러분에게 누가 양심이 없다고 하면서 '저 녀석은 정신나간 녀석이야' 라고 하면 가만 안 있잖아요? 양심은 있는 것입니다. 그 양심이 얼마나 크냐? 양심은 무한히 크다는 거예요. 양심이 바라는 욕망은 채울 길이 인간세계에는 없다고 보는 거예요. 그럼 그 양심이라는 것이 어디서 왔어요? 오늘날 소위 진화론자들은 말하기를 '진화를 통해서 그런 양심 작용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진화의 내용이 그런 방대한 양심적 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요? 아메바라든가 원소라든가 어떤 존재들이 그런 힘과 그런 방대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동기와 내용을 갖고 있느냐 이거예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디서 왔느냐? 양심의 출처는 어디예요? 양심은 우리 인간이 측정할 수 없는 무한의 세계에 기원을 두고 있어요. 인간이 볼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다구요. 멀다면 무한히 먼 거리, 또 가깝다면 무한히 가까운 자리입니다. 여러분, 너무 멀어도 안 보이고 너무 가까와도 안 보입니다. 그거 알아요? 멀어도 안 보이고 가까워도 안 보인다는 거예요. 눈으로 보는 데는 요 초점을 맞춰야 잘 보이게 돼 있다구요. 점점 가면 갈수록 안 보이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양심은 멀다면 무한히 먼 데 근거를 둘 수 있고, 가깝다면 무한히 가까운 데 근거를 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작과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기원을 갖고 있다는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