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하나되시려는 아버지 1960년 05월 2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9 Search Speeches

인간의 타락으로 부자유하게 되신 하나님

예수님 이후에 움직여 나오신 하나님을 알기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은 4천년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왔습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예수를 보내게 될 때 예수와 더불어 오시던 하나님, 예수는 갔을망정 예수의 십자가와 같이 계시던 그 하나님, 인간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을망정 그 인간을 버리시지 못하고 후손까지도 붙들고 나오시는 하나님을 여러분은 생각해 봤어요? 이것을 해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갖추지 않는다 할진대 여러분은 신부될 꿈도 꾸지 마십시오.

우리는 말씀의 예수를 알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말도 무조건 믿으라는 게 아닙니다. 이치에 타당하고 마음에 혁신적이고 극단적인 무엇이 닿아, 지금의 나를 깨뜨려 버리고 새로운 무엇을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거든 그것을 잡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런 경지를 통과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빚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붙들고 무한한 노력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노력을 하셨습니다. 거기에 보답하려면 27억 인류를 한꺼번에 제물로 드려도 갚을 수 없습니다. 심정에 못을 박히면서도 수고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하나님은 무지한 인간들을 대해 섭리해 나오심에 있어서 동기와 과정과 목적을 가지고 대해 주셨습니다. 대해 주시는 데는 네거리의 교통순경처럼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는 식이 아닙니다.

성경 가운데 하나님이 의인을 대하여 명령하신 내용의 말씀이 있는데,하나님은 그 일의 몇 천배의 과정을 지내시고 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내게는 그런 것을 알고 차마 성경을 보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을 대하여 이렇게 하라 하실 때 편안한 자리에서 그렇게 하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를 몇 백번 통과했기 때문에 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한번쯤 해보고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몇 백번 몇 천번 해보고 나서 하라는 것입니다. 사탄과 싸움에서 이기면 이러이러한 것을 보장하겠다는 기준을 세워 놓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대하여 하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죽으라 한 것도 하나님이 죽음의 고충을 거치고 난 후에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 만인이 고통 가운데 있는데도 영광이나 받고 보좌에 앉아서 호령하는 하나님이라면 사탄이 참소합니다. 사탄이 참소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적인 애달픔이 사탄세계의 모든 것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천리 원칙과 영원한 심정을 가졌기에 사탄이 참소 못하는 것입니다. 원리는 깨뜨리지 못합니다. 불가침입니다. 하나님은 원리적인 심정으로 타락한 인간을 오늘날까지 품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하나님은 누구신가? 또 타락한 종족은 누구인가? 그 하나님은 타락한 종족의 아버지라는 거예요. 만유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이 아버지는 한을 가진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어 감옥에 끌려가는 아들의 뒤를 따라오는 아버지가 되었다는 거예요. 자유로운 하나님으로 알고 있지만 그 마음에는 어찌할래야 어찌할 수 없는 쇠고랑이 채워져 있습니다. 오랜세월을 하루와 같이 아들의 죽음과 아들의 쓰라림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따라나오신 하나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망스럽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은 타락한 조상의 아버지가 되셨습니까. 당신이 불쌍합니다' 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자식된 마음이 복받쳐 올라 이렇게 호소하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그를 붙들고 통곡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쁨 가운데서 우리를 만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철창에 갇히어 찢기고 꺾인 아버지를 붙들고 '아버지,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당신이 내 아버지 되신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하고 통곡하는 아들딸을 찾아 헤매시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멋대로 가고 시대는 흘러가도 하나님 아버지가 자식을 대하는 일편단심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사태가 복잡하고 환경이 복잡할수록 하나님은 더 걱정하시는 것입니다. 6천년 전에는 우리의 선조 개인을 대해서 애달파하셨으나, 세계 인류가 사망의 늪에서 허덕이는 이때에 있어서는 제일 처량한 심정을 갖고 애달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어찌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불효 막심한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