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집: 책임분담 완성과 참된 사랑 1991년 07월 14일, 미국 알래스카 코디악 Page #134 Search Speeches

영생은 참사'- 의해 가능해

참사랑에 의해서 영생이 가능해요. 왜냐? 창조의 출발, 동기, 과정으로부터 모든 목적이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과정을 통해서 결과가 나온다구요. 자기의 몸 마음의 완성이라는 것은 참사랑에 속하는 것에 의해서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한의 근본, 원인으로부터 과정, 그것으로부터 이상의 결실을 맺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참사랑밖에 없다구요. 참사랑에 의해서,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도 영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존하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영존하는 거예요?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지식도 아닙니다. 그것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들, 사랑을 중심삼고 영존한다구요. 하나님의 기쁨은 독자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 기반이 필요해요.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혼자로서는 외로운 것입니다. 종적 상대, 횡적 상대, 전후의 상대를 원하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 하나님을 통하는 사랑이 없으면 영생의 길은 연결되지 않습니다. 생명으로부터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부터 연결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근본이고 사랑이 목적입니다. 원인과 결과를 통일시키는 것이 창조이상, 참사랑의 기준입니다. 알겠지요? 영생은 참사랑에 의해서 연결된다구요.

그 사랑에 의해서 생명이 생겨나지요? 그 생명에 의해서 혈통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남자의 생명, 여자의 생명의 사랑을 중심삼고 백 퍼센트 용솟음쳐서…. 수증기가 되면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부딪침으로써 번개가 치지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부딪쳐서 비가 내리는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하나 되어서 무(無)가 되어 가는 경지에서 자기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남기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들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구형체를 이루면서 크게 되면, 그것은 다시 작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한 그것은 전부 다 근원으로 돌아가지요? 제로(zero)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무엇을 남기느냐 하면 중심을 남기는 것입니다. 중심을 종적으로 상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들딸입니다. 아들딸은 자기 자신을 대신하는 열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인 인간도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사랑에 의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의 환경을 이루는 데는 사랑의 환경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된다구요. 사랑의 실체권을 갖는 데는 사랑을 중심삼고 실체적인 체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을이 되면 전부 다 알 수 있습니다. 1년 중 성공적인 과정을 통과해서 얼마나 훌륭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느냐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이라고 해도 전부 다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모두 내적인 사랑을 어떻게 표면화해서 세계로 확대하느냐? 이것은 친척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혼자서 세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는지를 생각해 봐요. 지금도 그래요.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버런 문의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계뿐만 아니라 정치권에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일생이라고 하는 것은 뭐 백 년도 안되지요? 그러한 짧은 시간 동안 이룬 그것이 어떻게 영원한 역사에 통할 거예요? 생명의 기반과 하나님에게 통하는 사랑의 기반이 영원히, 무한하게 확대될 수 있는 배후 관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짧은 생애에 있어서 영원의, 무한한 환경권을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이외에는 이론적으로 아무것도 없다구요. 알겠지요? 「예.」

참사랑을 동기로 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서 나타난 단 하나의 결실, 그것이 결과지요? 동기로부터 과정, 결실까지 완전한 승리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생활의 중심이 뭐냐 할 때는 사랑이야! 사랑이지요? 그 사랑은 하나님과 참부모로부터 비롯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내적인 생활은 승리적인 하나님과 참부모와 같이 살고, 같이 움직이고,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의 사랑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체휼적인 생활 동역입니다. 같은 자리에 선 동역(同役), 이러한 통일권을 이루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