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집: 모시고 싶은 아버지 1961년 02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5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소원

그러면 아버지의 소원은 무엇일 것이뇨? 내 개체가 아버지의 소원이 되어 있습니다. 내 한 개체가 소원인 동시에 나를 중심삼은 가정이 소원이요, 가정을 중심삼은 사회가 소원이요, 사회를 중심삼은 세계가 소원이요, 세계를 중심삼은 하늘땅이 소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아버지 앞에 효자가 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세밀한 분야까지 아버지와 같이 의논하는 사람입니다. 어려울 때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아버지와 같이하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왜 불행했느냐? 지금까지 하나님이 왜 탄식했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고생할 때 같이 고생해 주는 아들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생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당신이 고생할 때 같이 고생해 주는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 고생도 감사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입니다. 슬픔과 고통을 같이 할 수 있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들이 견디기 어렵고 넘어가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 가운데 처해 있을 때 위로해 주시는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사망이 부딪쳐 들어오는 고통의 자리에 동참하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 사망을 초월할 수 있는, 사망의 권위를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고통받을 때 같이 고통받고 하나님이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인류를 붙안고 나오시는 하나님은 혼자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혼자 억울함을 당하고, 혼자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고통당할 때 그 고통을 같이한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이 슬퍼할 때 그 슬픔을 같이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고통이 심했고, 슬픔이 심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끝날, 이 시대가 아무리 악하고, 아무리 사망의 물결이 휩쓸어친다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막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는 사람,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더불어 고통 가운데에서 뒤넘이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가치적이 존재가 될 것이요, 하나님의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될 것입니다. 그런 아들딸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서 낙망하거나 슬퍼하시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품고 그런 자리에 처해 있는 아들딸을 권고하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진정으로 하나님을 모셔야 되겠습니다. 모시는 데는 어디서부터 모셔야 되느냐? 기쁨의 자리에서 모실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슬픔을 붙안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자리에서부터 모셔야 됩니다. 그런 참다운 아들딸을 찾지 못하고 수고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가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같이 슬퍼하고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나서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비로소 소망의 대상으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을 부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하시는 고통스러운 자리에 동참하여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자는 하나님이 책임을 지고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이 땅 위에서 제일 슬픈 자리, 제일 고통스러운 자리,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자리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하나님과 더불어 고통당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셔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아들이라는 인정을 받아야만, 영원한 이상세계가 이루어진 그때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영원무궁토록 아들로서 하늘땅 앞에 자랑하고 여러분 자신들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한 여러분은 저나라에 가서도 한 면밖에 통할 수 없습니다. 천상에 가더라도 제일 어려운 자리에 갑니다.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의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소망 가운데에서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아들딸 말고 슬픔과 고통이 물결치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아들딸을……. 소망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아들딸은 많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아들딸은 심히 적습니다. 심히 적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모시는 자는 어떠한 자냐? 기쁨과 소망 가운데에서 모시는 자가 아니라 고통 가운데에서 모시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주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줌으로써 하나님께서 친히 붙들고 `내 아들아, 내 딸아, 내가 있나니 참고 견디며 싸워라' 하고 위로해 주는 자입니다.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한 하나님을 영원한 내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