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집: 뜻을 품은 예수 1970년 12월 2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36 Search Speeches

자진해서 뜻 일선- 서자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을 두고 볼 때에 누가 원수냐? 부인이 통일교회를 믿으면 남편이 원수가 되고, 남편이 통일교회를 믿으면 부인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라가 원수요, 기성교회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부분이 원수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기쁨의 길을 나오지 않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심었으니 거둘 때에도 그러한 자리에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 가지를 볼 때 통일교회는 합격입니다. 부인이 통일교회에 다닌다고 남편이 얼마나 반대를 했습니까? 선생님은 별의별 것을 다 봤습니다. 머리가 깨지지를 않나, 다리가 부러지지를 않나, 얼굴이 터져 오지를 않나, 옷이 찢겨 오질 않나, 별의별 것을 다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도 교회에 와서 선생님에게 사정을 하는데, 선생님이 욕을 할 수 있겠어요? 뜻의 길을 가는 데는 그런 일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길을 갔기 때문에 우리도 그런 처지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될 운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벌어진 일들을 수습해야 할 책임을 하다 보니 이제는 통일교회가 훌륭하다는 소문도 많이나 있습니다.

가정이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나라가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교회가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거기에 부각되는 것은 예수님의 뜻, 예수님의 뜻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리더라도 '예수님의 뜻!', 교회를 잃어버리더라도 '예수님의 뜻! ', 부모와 가정 전체를 잃어버리더라도 '예수님의 뜻!'이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에 귀결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가정의 기반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이요, 잃어버린 교회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나라와도 새로운 인연을 맺고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런 자리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 서지 않고서는 뜻길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인들은 자진해서 그 길을 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몰아내서 가는 것보다도 자진해서 가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책임을 못해서 서러웠으므로 우리는 자진해서 책임을 하자는 것입니다. 자진해서 가정을 떠나고, 자진해서 교회를 떠나고, 자진해서 나라를 멀리하게 되면 그것이 곧 뜻을 위해 싸우는 일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의 이 나라를 위하고, 이 교회를 위하고, 이 가정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가정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일생을 통해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뜻을 품은 예수님의 사정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서려면 오늘날의 이러한 교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믿던 신앙 가지고는 안 됩니다. 뜻을 중심삼고 부락을 사랑하고, 뜻을 중심삼고 새로운 교회를 편성하고, 뜻을 중심삼고 새로운 제자를 규합하는 그러한 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예수님의 사정을 잘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아이를 낳아서 길러 봐야 부모의 심정, 어머니의 심정을 느끼는 것처럼 자신이 당해 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교회에게 배척을 받아 보고, 부모에게도 배척을 받아 보고, 나라에게 쫓김도 받아 봐야 '아, 예수님의 외로움이 이렇구나'하고 실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수십년의 고난과 핍박의 역사는 통일교회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기간 안에는 마이너스가 되었을는지 모르지만, 정상적인 전통을 세우는 데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고난과 핍박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 동안 여러분들이 뜻을 중심삼고 얼마나 눈물지었느냐 하는 것이 예수님과 가까와질 수 있는 조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죽자 살자 믿고 따라나오던 제자들이 전부 다 도망갔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여러분을 통하여 전도되어 죽자 살자 뜻을 믿고 따라 나오던 사람이 일조일석에 뜻을 버리고 가면, 가슴이 메어지고 뼛골에 사무치는 서러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느끼면 그저 떼 눈물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거 이상하지요? 그들과 하등의 상관도 없는데 왜 눈물이 나오느냐 하면 뜻을 중심삼았기 때문입니다.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를 붙들고 사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같이, 나라님과 하나님을 모시는 것같이 모시겠으니 제발 이 길을 같이 가자고 사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의 입장에서 용서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마음으로 그 한 사람을 붙들고 사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부활 후 40일 동안을 사정하며 제자들을 다시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사정을 알게 됩니다.

자식을 많이 길러 본 부모는 악한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에게서 자신이 죽더라도 원수를 맺어 놓고 갈 수 없는 심정적인 사연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