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집: 위하여 존재하는 세계 1974년 05월 07일, 일본 동경 제국호텔 Page #19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위하- 존재하" 원칙을 세우신 세가지 이유

그러면 하나님은 왜 위하여 존재한다는 원칙을 세웠던 것일까? 구태여 그런 원칙을 세우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본인이 질문을 한 가지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본심(本心)을 잘 분석해 볼 때, 우리들의 본심이 선한 입장에 서 있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만일 자기를 위해서 생명을 걸고, 혹은 백 퍼센트 희생적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에게로 행복이 올 수 있게 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을 문제삼아 볼 때에 그 백 퍼센트 기준에서 50퍼센트 정도를 취하여 포켓에 넣어 두고 50퍼센트를 되돌리려고 하는 그런 본성을 가진 사람이 있겠어요? 누구나가 다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실은 이 마음이 훌륭한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백 퍼센트의 사랑을 받았을 경우 그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인간이 타락을 했어도 본연의 세계로 되돌아 가고 싶은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일 내가 비(B)라고 하는 사람에게 백(百)의 은혜를 주었을 경우 그 사람은 나에게 백 이상을 돌려주게 됩니다. 그 백 이상은 진심을 가지고 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할 경우 나 자신도 또한 보답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데, 그때에는 120퍼센트 이상의 것으로 돌려야 됩니다. 그렇게 비(B)에게 돌려 주면 반드시 120퍼센트 이상이 되돌아 온다고 하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게 됨으로써 회전하는 데에서 영원이라는 관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영원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박수) 이러한 데에서 발전이 옵니다. 번창합니다. 번식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부모님들이 자식을 교육할 때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란 이러이러한 일이다, 타인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라, 전체를 위하여 봉사하면 복이 온다, 훌륭하게 된다'고 말들을 합니다.

내용은 분명히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결론에 있어서 그러한 것을 말하는 것은 우주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러한 말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한편, 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러한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중심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사람은 해와 달이 바뀌면 바뀔수록 어떠한 사람이 되느냐 하면 틀림없이 중심인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에 열 사람의 식구가 있는 가족이 있다고 합시다. 거기에는 부모가 있고 형님이 있고 누이가 있습니다. 그 중 제일 아래 동생이 그 가족을 위하여 자신의 전체를 바친다고 할 것 같으면 자연히 그 부모도 그 어린애를 중심으로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뿐만 아니라 형님도 누이도 틀림없이 제일 아래 동생을 중심으로 세운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위하여 존재하고자 하는 사람은 중심자가 된다고 하는 철칙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여기에서 인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중심자가 결정되면 전가족이 자동적으로 그의 주관(主管)을 받고자 합니다. 원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그 집의 중심자가 되어 주기를 모두가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에 있어서도 주관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정말로 자기를 위해서 애쓰는 사람으로부터는 주관을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주의 중심자라고 하는 그 하나님이 우주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는 것에 의해 우리가 주관을 받는다고 한다면, 그 행복감은 다시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존재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은 중심자 결정과 함께 자동적인 이상권(理想圈)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무엇인가 하면, 사랑과 이상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고 그것을 손아귀에 넣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욕망입니다.

지금까지의 사람들은 그 사랑과 이상은 자신에 의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결코 자기 것이 아닙니다. 이상도 역시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기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자에 의해서 주어진다고 하는 것이 철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상도 역시 자기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자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보다도 귀중한 그 사랑과 이상을 받아들이려면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