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집: 고향을 향하여 1991년 08월 29일, 한국 국제연수원 Page #134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소원과 슬" 사정

그 입장이 된 인간이라는 것은 이 땅 위에서 고향에서 살 수 있었던 본연의 그 어떠한 뜻을 이룬 사람으로서 하늘땅 앞에 자신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모양이 아니라, 하늘땅 앞에 얼굴을 못 드는 모습인 것입니다. 낮이 찾아오나 밤이 찾아오나 자기 모습을 바라보면서 낮이 오게 되면 상대적으로 세계를 바라봐야 하고 밤이 오게 되면 상대적으로 모든 전부를 품고 밤을 맞이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그날 그밤이 자기를 비판하지 않으면 안되고 자기 자신을 책망하지 않으면 안되는 생활이니, 이 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냐? 그런 생활이 하룻밤뿐만이 아니라 일생을 넘어 생애를 연결시켜 가지고 대대손손으로 50억 인류로 확대될 때까지 그런 사정에 처해 있는 자신들을 망각하고 갈 길을 모르는 입장에 처한 인류상을 바라보는 하나님 입장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느냐는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그런 사실을 바라보게 될 때 여기에서 사는 비참보다 몇 백 배, 몇 천 배 기가 막힌 사정을 지닌 분이 있다면 그는 부모의 자리에 있는 하나님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어떻게든지 인류에게 고향에 돌아올 수 있는 길을 해방하자는 것입니다. 이 길을 열기 위한 것이 종교운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속해 있는 민족,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적 여건, 습관, 풍습이 다르고 문화배경이 다른 환경을 거쳐 이걸 엮어서 세계를 수습해 가지고 끝날을 맞이하여 비로소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길을 가려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 타락 이후에 수천 수만 년, 수억 년의 역사를 지녀 오면서 품고 오신 그 슬픈 사연을 누가 알아 드리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분은 우리와 상관없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근본이 되시고 그분이 우리의 모든 생명과 사랑을 중심삼는 이상적 기대를 편성해 주는 그런 분입니다. 생활 환경에서나 생애 환경을 통해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역사 환경을 통해서 그것을 분리시킬래야 분리시킬 수 없는 인연적 중심 존재가 그와 같은 고독한 자리에 몰려 가지고 역사를 바라보면서 눈물지음의 사정이 얼마나 많았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을 잃어버린 자녀들을 하늘이 볼 때, 그 자녀들은 모르지만 그 자녀들이 살고 있는 이곳을 하나님이 몇 번이나 다녀갔겠느냐?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러면 다녀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겠느냐? 간절하다면 그 간절함에 비해 이 땅을 찾아오고 싶은 날들이 얼마나 많았겠느냐 이거예요. 그러나 찾아올래야 찾아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쫓아냈으니까. 쫓아낸 부모로서 자식의 죄를 용서 못하는 한, 찾아올래야 찾아올 수 없는 하늘의 심정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느냐? 그렇지만 버릴 수 없습니다. 버릴 수 없는 사정을 품은 하늘의 곡절에는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러니 불효자식, 탕자를 둔 어떠한 부모로서 찾아갈 수 없으니까, 쫓아냈으니 찾아갈 수 없으니까, 그 주변의 모든 자기의 농토를 지키는 사람 혹은 자기 신세를 지는 사람을 통하는 수십 단계를 거쳐서 은연중에 자기 소심의 마음, 소심의 사연을 엮어 가지고 전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그는 모르지만 배후에 그런 일을 해 오신 분이 한 분 있다구요. 그분이 누구냐 하면 종교를 통해서 섭리해 나오는 우리 인간의 종적 참부모이신 하나님이었더라 하는 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됩니다.

직접 부를 수 없으니 많은 사람을 시켜서 관계를 맺게 할 뿐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영인들, 그 중에서 선한 선조들이 있으면 선조들을 다리 놓아 가지고 '너라도 나가서 이런 사연을 은연중에 깨우쳐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준비하라.' 하시면서 수많은 한의 역사, 수많은 원한의 역사를 겪어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게 종의 종의 사정으로부터 종의 사정, 양자의 사정, 그 다음에 서자, 직계, 어머니 해와로부터 아담을 통해 가지고 통고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역사노정을 거쳐오는 이 일이 우리 탕감길을 가는 인간들이 가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대신 이 길을 개척해 나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