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집: 심정의 경계 1967년 06월 12일, 일본 동경교회 Page #279 Search Speeches

하나님께서 비참한 자리로 내모" 이유

하나님의 심정은 지상의 재림주를 중심으로 하여 어느 한 점에서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체가 된다고 하는 것은 기쁨의 심정권에서의 일체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슬픔의 심정권에서 일체가 되지 않는 한 기쁨의 심정권에서 일체가 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심정 문제를 운운하는 데 거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의 경계를 중심으로 해서 슬픔의 심정과 기쁨의 심정이 있는 것이다. 그 중 하나님의 심정은 어디에 속할 것인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정은 슬픔의 심정뿐이었다. 기쁨의 심정은 아직도 요원한 미래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슬픔과 괴로움의 심정으로 위로하기 보다는 기쁨의 심정을 중심으로 하여 위로하길 원하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소망이며,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면 이 길의 경계선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전인류가 경계선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낙원에 가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한 국가를 빨리 복귀해야 한다. 수많은 나라들이 손에 손을 잡고 민족을 초월하고 민족 감정을 초월하여 천적 감정으로 엮여져 일체가 되어야 한다. 어느 나라가 앞장서서 세계적 복귀의 문제를 책임질 것인가? 다른 나라보다 우리 나라가 앞장 서야겠다고 싸우는 것을 하나님은 좋아하신다. 나라들끼리 하나님을 위하여 서로 봉사하겠다는 입장에서 다투는 것을 환영하신다.

우리들은 무엇을 원해야 되는가? 최고의 나라가 아니면 최하의 나라가 되기를 원해야 한다. 중간의 나라는 필요치 않다. 최고와 최하의 두 극을 돌리면 원이 그려지게 된다. 그러면 이와 같이 비참한 최하의 나라는 몇개국이 필요한가? 3개국이 필요하다. 또 상급의 나라는 4개국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모두 합하면 7개국이 된다. 이 7수만 섭리권내에 들어오게 된다면 세계는 복귀될 수 있다.

자녀를 많이 가진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를 대하는 마음에는 차별이 없는 것이다. 맏아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잘 구비되어 있는데, 막내 아들은 불구자라고 할 때에 심정적인 입장에서 볼 때 부모의 마음이 어느 편으로 기울어질 것인가?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불쌍한 자식에게 마음이 더 갈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병신의 입장에 세워 나오셨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이 행복의 근원이 되어 나왔던 것이다.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역사과정을 통과하면서 하나님 앞에 불구자와 같은 생활을 해왔다. 왜 그랬을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참다운 심정을 제물로 바치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그런 입장에 세우셨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 어린 마음의 표현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순교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항상 맞고, 항상 쫓기는 불구자와 같은 생활을 해온 것과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비참한 입장에 서 왔던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그러한 입장에 세우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심정적으로 선생님은 우리 교회의 식구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