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인연의 행로 1972년 07월 1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32 Search Speeches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하라

그러려면 복귀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처녀 총각들이 맨 처음에는 서로 죽자살자 좋아서 결혼했지만, 지난날을 가만히 보니까 사랑하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했던 흔적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기뻐할 상대가 있어요? 손들어 봐요. 있어요, 없어요? 자, 우리 여자들 있어요? 우리 할머니들, 옛날 할머니들은 남편에게 절대 순종하는 법에 매여 살았지요? 그런데 남편을 가만히 보니까 외도를 한다고 할 때,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또, 그런 정력을 가졌다고 할 때 좋아할 사람 있어요? 지금까지 좋던 것이 뒤집어지는 거라구요. 왱가당 댕가당. 전부 다 위가 아래되고 아래가 위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마찬가지라구요. 타락한 인간도 그렇거든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들로 맞으려고 할 때, 원수의 아들로 태어나 가지고 원수의 사랑을 받으면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아이고 좋아, 아이고 좋아' 하면서 살아온 그런 꼬락서니를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이 그러한 작자를 사랑하고 싶겠어요? 여러분 대답해 봐요. 사랑하고 싶겠어요, 사랑하고 싶지 않겠어요?「사랑하고 싶지 않겠습니다」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그런 패들은 절대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보기만 해도 그저 메스껍고, 보기만 해도 그저 밉고 보기만 해도 물어뜯고 싶고, 보기만 해도….그럴 수 있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이 볼 때 '야, 고거 고거…'그럴 것 아녜요?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말예요.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는 말은 인간에게 있어서 위대한 복음이다 이겁니다. 미완성이요, 절망권내의 역사적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을 두고 볼 때, 그런 인간 앞에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는 말을 했다는 것은, 이것은 우주적인 혁명입니다. 우주적인 혁명인 동시에 우리 인간 앞에 지극히 복된 복음입니다.

더 사랑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사랑을 못해서 그렇지 더 사랑하면 어떻게 될 것이냐? 수가 난다는 것입니다, 수가. 인간세계에서 상상하지 못할 고차적인 사랑의 세계가 비로소 문을 여는 것이 아니냐? 사랑의 세계가 현현되는 것이 아니냐? 새로운 천지에서 활기를 펴고, 환희와 기쁨에 충만한 모습으로 천지를 자기 것과 같이 사랑하기 위하여 제일보를 나서는 행복된 그 자아가 얼마나 멋지겠느냐?

그것을 볼 때 하나님도 '히야-' 하고 침을 흘린다는 것입니다. '아이구 좋구나, 야, 야 너만 가지 말고 나도 데려가 다오!' 하나님도 그걸 보고 위신상 가겠다고 나설 수 없어도 마음으로는 고대하고 있을 때 '하나님 가십시다' 그래야지 고대하지도 않는데 '가십시다!' 이런다고 나설 것 같아요? 마찬가지예요. 사람과 마찬가지라구요. 사람이 하나님을 닮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양반은 이 땅에 와 가지고 누구보다도 자기를 더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를 더 사랑해도 안 되는 것이요, 부모를 더 사랑해도 안 되는 것이요, 아들딸을 더 사랑해도 안 되는 것이요,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고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혁명적인 이야기입니다. 파탄시키고 파괴하는 것 같은 말이지만, 건설과 희망의 교차로가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느끼는 기독교인들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대하여 그렇게 부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 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