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집: 뜻을 품은 예수 1970년 12월 2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28 Search Speeches

도리어 예수님-게 고통을 안겨 준 제자"

그러면 예수님은 그러한 어려움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었느냐? 틀림없이 '미래의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로는 그래도 이들이 저들보다 더 낫지 않겠느냐' 고 생각하며 그 어려움을 극복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눈물 흘릴 때면 같이 눈물을 흘리는 시늉이라도 하고, 산고개를 넘어갈 때는 같이 따라가려고 하고, 외로운 표정을 짓게 되면 말로라도 위로해 주려고 하는 그러한 제자들을 생각할 때, 그래도 가야할 길은 이 길밖에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또, 그러한 것을 느낄 적마다 무지한 제자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겠습니가?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느 한 개인으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대하는 마음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는 외로운 마음이 맺혀져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가기를 바라는데 제자들은 저렇게 가기를 바랐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바라는 것이 상치되고 상반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것을 수습해서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돌이키기 위해 끊임없는 생각을 했고, 또 생활을 통해서 그들을 감화 감동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자식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판국인데 아무런 인연도 없고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제자로 모아서 자기와 더불어 생사를 나눌 수 있는 자리에까지 이끌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던 교단과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나라를 형성해야 하니, 그 길이 얼마나 망망한 길이요, 외로운 길이었겠습니까?

그렇지만 4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참고 참아 나오신 이스라엘 민족, 하나님을 믿어야 할 그 이스라엘 민족이 하늘을 배반하고 불심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얼마나 애달퍼하셨는가 하는 그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참아오신 것을 표준삼아 스스로 위안받으며, '내가 이것이 싫다고 하게 되면 새로운 이스라엘은 어떻게 세울 것이며, 새로운 유대교를 어떻게 형성하겠느냐'고 생각하며 예수님이 얼마나 참아 나왔던가를 우리들은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알 수 있게끔 백방(百方)으로 가르쳐 주었고, 암시해 주었으며, 직접 행함으로써 제자들에게 새로운 뜻을 깨우쳐 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내심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 당신의 환경은 원수의 환경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전체의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서 제자들을 거느린 예수님은 비정상적인 환경에 둘러싸인 원수권내에서 새로운 인연을 조성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예수님은 가중된 핍박의 환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생활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고충을 느끼는 생활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성경 가운데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보더라도 예수님의 심정에 외로움과 괴로움이 얼마나 사무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찾아 놓은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의 그런 마음을 위로해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대상이 못 되었기 때문에 결국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될 때에 다 배반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