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집: 행복과 사랑 1969년 05월 18일, 한국 수원교회 Page #120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사'을 받을 수 있" 자리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에 있느냐? 사랑은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 또한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러분은 가겠어요, 안가겠어요? 「가겠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부모 앞에 있는 자식이 자리입니다. 어떤 부모에게 아들이 넷 있는데 그 부모가 그 네 아들에게 사랑의 차이를 두겠습니까? 맏아들이니까 이만큼의 사랑을 해주고 동생들은 각각 요만큼의 사랑만 받으라고 차이를 두겠냐는 말입니다.

젖을 먹을 때도 자식들에게 차이를 두고 먹이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피와 살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자식에게 일일이 공급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는 젖먹이가 젖을 빨아 먹는 것을 보고 좋아합니다. 자식이 젖을 먹으면서 어머니의 목을 잡고 그러는 것도 아주 좋아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자기의 젖을 주면서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젖을 준다고 해서 오늘까지는 얼마짜리고 내일부터는 얼마짜리다 하며 돈을 청구하는 어머니는 세상에 없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뭐냐 하면 그 어머니의 얼굴은 못생겼다 해도, 여자다운 데가 하나도 없이 그저 눈, 코, 입, 볼 할 것 없이 전부 못생겼다 해도 아들딸을 사랑하는 데는 심각합니다. 젖먹는 애기에 대해서 사랑할 때는 누구보다도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기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누구한테 질 것 같습니까? 안 진다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학교에서 배워서 아는 것입니까? 그런 것을 가르치는 학교 봤어요? 또한 그것을 배워 본 사람 있습니까? 그것은 배우지 않고도 아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만나 가지고 애기 낳는 법 배우지 않았습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남남이 만나 가지고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도 누구에게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누가 가르쳐 주어서 아는 것도 아니고, 요런 것이다 하며 갖다 먹여 주어서 맛을 아는 것도 아니고, 실험을 해봐 가지고 아는 것도 아닙니다.

옛날에도 이런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은 없었고 지금부터 수천만 대의 후손에게도 이것을 가르쳐 주는 학교는 나올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이라는 것을 두고 보면 ‘나는 누구의 몇 대 후손이니까 우리 동네에 가면 배를 내밀고 으시댈 수 있고, 밤중에라도 여봐라! 하면 무엇을 대령하니 나는 부러울 것이 없다. 또 집에서는 독자이니 나는 행복한 사나이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가서는 그러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부인이 집에 늦게 들어왔다고 `어디 갔었어? 다섯시에 들어와야 할 텐데 왜 일곱 시에 들어왔어?' 하고 야단을 친다면 그 사람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러면 행복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냐? 콧노래를 부르며 맞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가정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또 심정, 사랑이 없어도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제목도 없이 말씀만 자꾸 하는 것 같지만 지금 행복과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