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집: 제4회 부모의 날 말씀 1963년 03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3 Search Speeches

복귀섭리의 목적

그래서 복귀섭리의 기준은 어디로 전부 다 집중시켜 나왔느냐? 참다운 부모, 참다운 자녀,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나왔습니다. 고통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 슬픔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 혹은 싸움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섭리의 뜻을 세우면서 하늘과 하늘의 뜻을 대하는 수많은 선조들, 섭리의 뜻을 대해 우리의 선조들은 투쟁해 나왔고 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더더욱 이 시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과연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혹은 창조주께서 공인하고, 만민이 공인할 수 있는 참다운 부모, 그 참다운 부모를 대하게 될 때에 그 부모로부터 흘러 나오는 참다운 사랑, 그 참다운 사랑에 품길 수 있는 참다운 자녀,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이것을 갖지 못한 것이 인생의 슬픔이요, 이와 같은 자리를 마련 못 해준것이 부모의 슬픔인 동시에 이런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자녀의 슬픔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슬픔이 역사적인 인연을 통하면서 혈통적인 역사를 뛰어 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슬픔의 기반이 부자의 인연 가운데 서려 있는 것입니다. 이 깊은 자리에서부터 그런 인연을 맺고 내려왔기에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하늘은 지금까지 모진 투쟁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를 창조할 당시의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요? 참다운 부모가 있으면 참다운 자녀가 있어야 되겠고, 참다운 부모와 참다운 자녀가 있게 될 때 거기에는 참다운 사랑만이 깃들어야 되겠고, 참다운 사랑을 중심삼은 부자의 인연에 있어서는 참다운 인연을 통하여 참다운 선만이 깃들어야 할 것이고, 참다운 사랑과 선이 깃드는 동시에 참다운 환경이요, 참다운 우주요, 참다운 천주로서, 더 나아가서는 참다운 이러한 기준에 설 수 있는 입장을 바라보는 것이 본래의 하나님의 창조 당시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해야 하고,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책임하여야 할 아담 해와가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바라던 전체적인 소원이 여기에서 저끄러졌다는 사실을 오늘날의 우리들은 뼈에 사무치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슬픔은 어디서부터? 아담 해와로부터, 우리의 슬픔은 역대 우리 선조를 거쳐 엮어져 왔나니 이렇게 엮어져 온 슬픔을 오늘날 우리 한 자체가 제거하고 청산해야 할 것이 개체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끝날 성도들 앞에 하늘이 추구하는 목적으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디서부터 이것을 제거해야 되겠느냐? 내 자신에서 물론 인연을 세워 놓고 여기에 참다운 부모의 기준을 세워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갈라졌던 심정이 다시 창조적인 본성의 심정으로 연결되어 '이는 내 참의 부모요, 이는 내 참의 아들이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어느 세상 그 무엇이, 제아무리 고통이 크다 할지라도 고통 가지고 끊을 수 없고, 제아무리 슬픔이 크다 하더라도 이 인연을 끊을 수 없고, 제아무리 사망의 고난이 크다 할지라도 이것을 끊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부자의 심정이 재연결될 수 있는 이런 순간이 지상에 나타나야만 이걸 수습할 수 있고 이걸 제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