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 그 어딘가를 찾아가야 할 우리 1958년 05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5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심정을 밝히" 용사의 길

그러면 오늘날 세계인류는 불교나 유교 혹은 기독교 등 제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고 있는 각 종교 그것으로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를 믿게 했던 동기의 주인공, 또는 그 동기의 주인공으로 나타난 진리의 말씀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 말씀을 밟고 올라서 그 내적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즉, 현상 속에 숨겨져 있는 내적 심정이 무엇인가를 해부하여야 한다는 거예요. 성경 말씀을 그저 절대적 구원의 표준으로만 세워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것만으로서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것을 뚫고 넘어갈 수 있는 용사들이 어디 있는 가 하고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어떤 보수적인 사상에 지배받을 것이 아니고 어떤 도주(道主)의 지배를 받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뚫고 올라가 어떤 도주를 내세우신 하나님과 직접적인 담판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도 자체의 모순된 문제를 해결지어 놓고 하나님의 내적 심정의 기준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러한 기준을 세우고 나설 수 있는 무리는 없겠는 가 하고,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무리가 있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것을 전부 들춰 놓고 재감정할 때가 왔습니다. 어떤 신학서적, 불경, 어떤 경서는 물론하고 전부 나열시켜 재분석하고, 거기에 실제 체험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 즉, 예수의 내적 심정이나 하나님의 내적 심정이 어떤 것인가를 찾아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섭리가 이렇게 된 곡절의 원인을 해명할 수 있는 신앙의 용자들이 나오기를 하나님은 소망해 왔음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해결돼야만 이 원리를 중심삼고 전체적인 원리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끝날에 이것이 다시 제 2의 원리로 세워지고 제2의 이념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한 것이 지상을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뜻임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입증시키기 위해 이제 여러분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수 없는 사선을 넘어야 합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있는 아무리 가까운 친구도 아무리 가까운 부모도 다 뒤에 두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어느 누구와도 동반할 수 없는 외로운 자리에 서 있고 무한한 공포가 엄습하는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달려야 할 과정에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무한히 달리는 이런 역사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어느 한 때 이 우주의 보이지 않는 세계에로 추방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 때가 반드시 오는 데 그런 것을 가리켜 종교에서 쓰는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지옥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그렇게 자신 있고 늠름했던 예수님께서 왜 미래와 현실을 자랑하지 못했던가. 완전한 원리적인 해결점, 역사적인 해결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과 미래를 자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 기독교인은 통분한 심정을 갖고 현실을 자랑할 수 있는 예수를 나타내어야 되겠고, 미래를 자랑할 수 있는 예수를 나타내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미래를 자랑할 수 있는 예수를 맞을 때가 와야 할 텐데 어찌하여 오지 않는 가. 역사적인 곡절의 조건들이 예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싸우던 목표는 역사노정을 청산키 위한 싸움이었지 이 현실만을 해결키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기독교의 싸움은 미래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고, 역사적인 조건을 해결키 위한 싸움권내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현실 기독교의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