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집: 천국을 찾아 이루려는 슬픈 아버지와 아들 딸 1959년 05월 1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7 Search Speeches

기쁨보다 슬""이 " 컸던 예수님의 생애

통일교회는 본래 험한 길을 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바라볼 때 환영하는 마음보다는 염려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환영하기 보다는 주저하는 마음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늘의 내용과 하늘의 실정, 즉 우리 인간을 대하여 찾고 계신 하늘의 사정이 이렇게 간곡하였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자기를 찾아 세울 수 없고 자기를 부인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자기 의식과 자기 주관으로는 비판할 수 없는 경지에 자기도 모르게 끌려갈 수 있는 어떠한 존재로 되어 있다면, 그런 경지의 슬픔을 느끼는 반면 주체적인 입장에서 하늘을 안심시키고 위로할 수 있는 한 부분을 맡아서 연결짓는 그 자리에서만 이 길을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편안한 길 가기 원하는 사람은 이 길로 오지 마십시오. 내가 걷고 보니 그 걸음은 친구가 없는 외로운 걸음이요, 동지가 없는 걸음이요, 사정을 통할 수 없는 걸음이요, 의지할 수 없는 걸음이요, 믿을 수 없는 걸음인 것을 알았습니다. 걷고 보니 그런 곡절을 지니고 계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오늘날 예수님을 소개한다면 먼저 슬픈 면의 예수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밥먹는 시간도 잊어버리고 잠자는 시간도 잊어버리고 슬픈 가슴을 붙안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몰리며 쫓겨 다니시던 예수님, 그 시대의 어느 누가 그의 심정을 알고 친구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까? 하늘은 서러운 하늘이었습니다. 하늘을 대신하고자 했던 선지자도 서러운 제물이었는 데 예수님마저 죽게 되니, 뜻을 품고 계셨던 하늘, 그 하늘은 서러운 하늘이었습니다.

그 하늘이 누구인가? 알고 보니 아버지였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알고 보니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였습니다. 우리 인류는 아버지의 서러움을 알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그 서러운 심정을 알려줘야 할 책임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선지자가 왔고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