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집: 혈통의 전환 1970년 10월 13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66 Search Speeches

새로 태어나" 길

그렇게 해서 예수님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고, 참부모의 혈육에 접할 수 있는 내인(內因)을 세웠다고 하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성신을 그리워하는 사랑의 길을 더듬어 가야 거듭나게 된다.

예수님의 상대자는 성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실체인 예수와 성신의 사랑의 길을 통과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며 남자가 여자를 그리워하듯, 예수와 성신의 일치된 사랑의 경지를 통과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의문도 없을 것이다.

성신의 은혜를 받으면 예수님이 매우 그리워서 견딜 수 없게 된다. 성신은 그러한 감동의 역사를 한다. 예수님은 신랑, 성신은 신부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그리워하여 이들과 영적으로 하나가 된 기쁨을 체휼해야 비로소 잃었던 본래의 사랑의 기준이 새롭게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중생의 체휼이라고 하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부활의 원리는 그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다. 하나님도 이 때문에 오랜 역사과정을 통과하셨다. 예수님도 역사적 비애의 운명을 짊어지고 그것을 극복해 나오시며 지금에 이르신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6천년이나 걸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6일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누가 알겠는가?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을 경우에는 타락한 인간 자체가 주관권을 복귀할 수 없다. 인간 자체가 그것을 찾아서 '이것이다'하여 세계적 인격의 권위를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 절망적인 세계에 선생님과 같은 사나이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을 슬픈 일인가, 기쁜 일인가? 여러분은 기쁘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기쁘지가 않다. 나는 평생 동안 목숨을 걸고 싸워 왔다. 그것은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어렵다고 하는 것은 하면 되는 것이지만, 이것은 그저 해서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는 되지 않는다. 완력이나 폭력으로서는 되지 않는다. 원칙을 철칙으로 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방 팔방에서 그 표준을 겨냥하면서, 중심적 위치를 벗어나지 않도록 해 나간다고 하는 것,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하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와 같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그에 대한 내적 기반을, 탕감의 조건을 세워 나왔다. 여러분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반을 만들어 여러분이 몰라도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평안권을 이룩했다는 것은 천주적(天宙的)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방면에서 선생님은 평생을 걸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성령이 예수님을 도와 타락시킨 해와를 끌어내고, 사탄편에 넘겼던 것을 끌어들여, 본래의 애정을 중심으로 해서 다시 낳았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는다고 하면 완전 복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떠했는가.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는데 있어서도 역사적 내인의 심정 기준에 결합시키기 위한 섭리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여자의 복중으로 들어갔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싸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담 가정에서는 아벨과 가인이 싸운다. 둘이 싸우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형님인 가인이 동생의 입장에 서야 한다. 형님이 어떻게 하여 동생이 될 수 있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탄을 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복귀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형제의 싸움인 것이다. 가인도 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아벨도 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 이후에도 다시 이러한 싸움을 하게 된다. 모두 형제를 중심삼고 싸운다. 에서와 야곱, 이들은 쌍동이로 태어난 자들로서 싸웠다. 이들은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싸웠다. 그리고 언제 또 싸웠느냐 하면 성장한 다음에 싸웠다. 40대에 싸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