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집: 자녀의 날을 맞는 우리의 각오 1970년 10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99 Search Speeches

통일교회 축복가정"이 책임해야 할 때

이렇게 탕감의 역사는 용서가 없으니, 민족이 잘못했으면 민족을 통하여서 해결해야 되고, 민족이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 민족과 더불어 있던 세계가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탕감의 현상을 놓고 볼 때 통일교회가 걸어온 역사과정에 서글프고 슬펐던 사실이 많았지만 뜻을 중심삼은 선생님 자신이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만일 죽었다면 어떠한 문제가 벌어졌을 것이냐? 비참한 민족이 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이란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해방의 날을 바라고 준비하여 왔습니다. 새로운 섭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고대하던 한때를 이 한국을 중심하여 이 민족과 이 강토에서 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때에 기독교와 이 민족이 환영하였더라면 오늘날 한국 민족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이 되었을는 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의 뜻도 세계적인 터전을 이루고 그 영광을 찬양하지 않는 나라가 없을 만큼 판도를 넓혔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나이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10여 년의 세월을 지나 가지고 여러분을 찾은 이 입장은 승리를 찬양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워 체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에는 아직 국가적인 탕감의 노정이 남아 있고 세계적인 탕감의 노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이것을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정신적인 면에서 유대교가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했듯이,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 민주주의를 지도하듯이, 앞으로 통일교회가 한국의 모든 사상과 정신적인 문제를 지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뿌리를 못 냈고, 우리의 계획이 전반적으로 국가의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자리까지 못 나갔기 때문에, 다시 시련 과정을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싸움의 역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 우리의 후손이 책임질 것이냐, 아니면 이 시대의 삼천만 민족이 책임질 것이냐?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책임질 만한 무리는 , 오늘날 이 뜻을 개척하기 위해 활동하다 피곤하여 지쳐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져야 할 민족적 책임이요, 국가적 책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축복가정은 어떠한 입장이냐?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유대교를 중심삼고 메시아를 희망하던 입장이 아니라, 메시아를 맞아 가지고 새로운 종족편성을 하여 한 단계 전진한 입장에 선 것이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개인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축복가정들이 총합해 가지고 새로운 역사를 꾸며야 하는 때가 온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밀한 내용은 시간이 없어서 전부 다 말할 수 없지만 오늘날 축복받은 이 가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은 개인을 위한 가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족을 대표한 가정이요, 세계를 대표한 가정이요, 하늘땅을 대표한 가정입니다. 이러한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가정적인 시련과 탕감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주관하는 데는 예수님 자신이 주관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정이 국가를 지배하는 것이 본연의 이치가 아니겠어요?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의 가정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이스라엘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그 나라의 모든 지성소를 지킬 수 있는 제사장이 되고, 그 나라 전체를 지도할 수 있는 새로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 예수시대를 중심삼은 소원의 기반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개인도 개인적인 남자나 여자가 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권을 대표하고 그 주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 제사장의 책임을 가정적인 책임으로 완결짓고 완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6천년 동안 찾아 나온 승리의 이스라엘권이 아니겠어요? 예수님 때에 잃어버린 것을 다시 재현시키기 위한 것이 재림의 역사일진대, 6천년의 섭리역사가 하나님의 내적인 투쟁의 노정이요, 사망의 순환길이었음을 우리는 자각해야 됩니다. 축복가정이 제사장을 대표할 수 있고 지방 장관이 대표할 수 있어야 하며, 영적 이스라엘과 유대교의 책임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천지를 지배하되 예수님 혼자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혼자서 지배하다가 예수님이 죽으면 그 유업을 누가 인계 받을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한 예수의 직계의 아들딸이 인계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천륜을 연속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매우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축복받은 가정이라고 해서 기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원하던 것을 변함없이 천추만대 계승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남겨야 할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이제부터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960년대까지는 개인이 승리를 다짐하는 때였지만,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가정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1960년부터 1967년까지는 , 즉 하나님의 날을 책정할 때까지는 선생님 자신이 가정의 십자가를 지는 때였습니다. 가정의 제반 요인을 탕감하여 넘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3년이 지나 70년을 맞이하면서는 , 즉 제2차 7년 노정의 3년을 넘기는 마당에 있어서는 가정적 승리의 터전을 이루어야 할 텐데 이것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다시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월 초하루부터 777쌍 축복받은 가정들에게 동원하라고 통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체 가정을 동원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자기 남편을 생각하고 자기 일신의 안락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시대가 왔다고 해서 누구에게 원망할 것이 아니요, 통일교회 때문에 수난의 길을 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축복가정으로서 응당히 가야 할 노정으로 알고 가야 하며, 여러분은 여기에서 자신을 중심삼은 부모의 날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횡적인 면에 있어서 이 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