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집: 정신력과 훈련 1964년 06월 12일, 한국 대구교회 Page #154 Search Speeches

공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서게 될 때" 용서가 -어

보라구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이 선생님과 같이 이 통일교회를 건설해 가지고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람 뭐 통일교회 문선생 욕하지 않은 사람 있어요? 여기 처음 온 사람들 중에는 있을는지 모른다구요. 이거 뭐 거의 다 욕했지요. 누구만큼 뭐 생각을 할 줄 몰라서? 누구만큼 뭐 잘먹고 사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란 말이예요. 비판할 줄 몰라서? 할 능력이 없어서? 여기에서 바라보는 선생님이 여러분들 우려먹고 사는 사람이예요? 무엇이든지 할 능력이 갖추어져 있어요.

어디에 가 가지고 변론을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고, 힘내기를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고, 무슨 권모술수를 해서 누구를 통째로 잡아 넣는 일을 하더라도 자신 있다는 거예요. 생각조차 못 하는, 사탄을 녹여 먹던 그 기술 맛을 알면 겨뤄 낼 자가 없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선한 제자들과 선한 아들딸을 가르치는 데는 그런 방법을 쓸 수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자식을, 혹은 참다운 제자를 기르려는 이런 작전을 하는 데 있어서는 원수를 잡고, 원수를 처치하던 방법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최후에 불리하게 될 때는 두고 보자는 거예요.

그렇다고 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은 그런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공적인 존재예요. 나는 하늘이 보장하고 땅이 보장하고 내가 죽으면, 내가 죽어 쓰러지면 내 쓰러진 이 몸의 모든 원소가 하늘에 호소한다는 거예요. 아벨의 피가 어땠다구요? 아벨의 피만 호소하느냐 이거예요.

내 땀이 호소하고 내 피가 호소하고 내 살, 세포 전부가, 내 걸으며 밟았던 모든 흙까지도 호소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런 신념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일단 공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서게 될 때는 용서가 없는 거예요. 우리가 그러한 탕감노정을 지금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들, 보라구요. 3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여러분들 공적이 얼마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아버지여, 내가 이 3년노정을 걸어왔지만 내가 수고한 이 모든 공적의 여건을 세워 가지고 이 천주를 복귀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뒷받침되었을 것인고…' 하고 내 마음에서부터 자기 행동과 생활 전체를 총합해 가지고 비판해 보라구요. 과연 내가 움직이는 그런 생활적인 방법이 6천 년 동안 하나님이 찾아오던 그 탕감의 내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할 것이, 또 세워 놓을 것이 있었느냐 이거예요.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만히 생각하면 말이예요, 이 탕감을 왜 해야 되느냐 말이예요. 내가 왜 이렇게 움직이느냐 이거예요. 내가 왜 이런 길을 가야 되느냐, 내가 왜 이렇게 굶고 앉아 있어야 되느냐, 내가 왜 욕을 먹어야 되느냐, 내가 왜 이런 비참한 행로를 걸어가면서 물의를 일으키고 가야 되느냐 이거예요.

가는 데는 악을 위한 것이 아니예요. 선을 위해서, 그것보다도 내가 한번 욕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후대의 수천만, 천천만 혹은 이 억조창생이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지니 얼마나 숭고하냐 말이예요. 얼마나 숭고하냐?

하루 일해 가지고 뭐 백 원이면 백 원, 하루 일해 가지고 백 원 받는 것보다도 하루 종일 일전도 안 받고 돌아서면서 '이 백 원을 삼천만 민중 앞에 나는 저금해서 줍니다' 하고 돌아서는 그 기분이 더 멋진 거라구요.

선생님이 만약에 돈이 있더라도 여러분들에게 월급을 안 주는 거예요. 절대 선생님을 믿지 말라구요. 물론 사상적, 이념적인 면에서는 믿되 자기 사정적인 면에서는 믿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 사정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예요. 이념적인 사정 앞에 자기의 사정을 굴복시켜 가지고 나가는 데 있어서는 선생님도 찬동한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