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집: 뜻을 품은 예수 1970년 12월 2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33 Search Speeches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을 이루어 "려야 할 통일교인

왜 그런 비참하고 곤욕스러운 자리에 몰리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 뜻은 이스라엘 나라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뜻이요, 유대교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뜻이요,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뜻입니다. 자기의 친척은 물론이요, 당시의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뜻이었기에, 예수님은 뜻을 이룬 승리한 자신의 모습이 되기를 언제나 그리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을 중심삼고 한 말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은 의인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땅을 원망하고 저주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뜻을 중심삼고 성경을 다시 음미해 보아야 하고, 오늘날 기독교를 다시 바라보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뜻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뜻 때문에 몰림을 당했고 항상 외로왔으며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음길을 갔습니다. 뜻을 중심삼고 그 죽음길을 가면서도 다시 오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남기고 갔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 없었다면 이러한 모든 일들은 예수님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뜻은 어디에 남아지고, 어디에서 거두어져야 되느냐? 기독교를 통해서 남아져야 되고 기독교를 통해서 거두어져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부르짖으며 찾고자 하던 뜻, 예수님이 중심삼고 싸워 나왔던 그 뜻을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찾을 수 있느냐? 오늘날 기독교가 예수님을 그리던 유대교와 같이 되었느냐 하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이 찾고 있던 이스라엘 나라를 가졌느냐?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워하던 그런 가정을 가졌느냐 할 때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축복해 주고 싶었던 부부, 부모, 신랑 신부의 인연을 가졌느냐 할 때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그런 동생과 누나 형제들을 가졌느냐 할 때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부모를 가졌느냐 할 때에도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재 기독교의 입장을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품었던 뜻과 더불어 사랑할 수 있는 형제와 가정을 가져야 되고, 사랑할 수 있는 종족을 가져야 되고, 사랑할 수 있는 교회를 가져야 되며, 사랑할 수 있는 나라를 가져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가져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오늘날 예수님이 소원하시던 뜻의 결실을 거둘 수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추구해야 할 입장에 있는 기독교가 오늘날 그럴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가졌느냐 하고 묻고 싶은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길로 몰아냈던 이스라엘 민족의 죄상을 넘어서 가지고 예수님을 시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앞에 나아가 '당신이 찾던 가정이 이런 가정이 아닙니까? 당신이 찾던 교회가 이런 교회가 아닙니까? 당신이 사랑하고 싶었던 나라가 이런 나라가 아닙니까? 이 모두를 거두어 당신에게 드리오니 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수억의 사람들보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이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결실을 맺는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많은 기독교인들 가운데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