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집: 복귀의 한 1971년 02월 19일, 한국 서대문교회 Page #29 Search Speeches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효자효녀로 공인 받으려면

자기가 행동을 하고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어디를 가게 되더라도 '울기 위해서 간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웃기 위해서 가고, 하나라도 내가 더 좋아질 수 있는 상대적인 그 무엇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좋을 수 있는, 필요 요건을 충당시킬 수 있는 상대를 찾아 가는 것입니다. 오늘 자기가 10만원의 돈을 벌고 싶어서 간다 할 때는 기쁜 거지요?

하나님께 애국자라는 공인을 받으려면 한국적이어야 되겠어요, 세계적이어야 되겠어요?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시대적이어야 되겠어요, 역사적이어야 되겠어요? 역사적이어야 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전체를 보더라도 이런 사람 이상의 사람은 나올 수 없다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아무개야 이리 와라. 네가 애국자다'라고 하시면서 세계의 애국자 대장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세계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충성하고 얼마나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백 번 죽어 살아나고, 천 번 죽어 또 살아나더라도 하늘 앞에 충신의 도리를 다하고 죽으면 한이 없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 몸부림친 사람이 아니었겠어요?

이 말이 실감이 안 나거든 하나의 예를 들어서 얘기해 봅시다. 아들 다섯과 딸 다섯을 가진 한 부모가 있다고 합시다. 여기에서 딸은 시집을 가면 남의 집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모를 위해서 효성을 하는 데는 아들보다 낫습니다. 아들들은 전부 다 건달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분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니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들들은 돈만 생기면 주막으로 가서 별의별 놀음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한아들이 아버지께 '아버지! 나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돈이 좀 필요한데 좀 주소!' 하면 아버지는 '그래 주지' 하면서 돈을 줍니다. 이렇게 해서 달라고 할 때마다 한 번 주고 두 번 주고 세 번 주고 나서 가만히 알아 보니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준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세 번까지는 주다가 더 이상은 주지 않을 때 그 아들은 어떻겠어요? 반대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아버지가 이제는 못 준다 하면 자식은 '아버지, 이만큼은 내가 활동하는 데 꼭 필요한 돈인데 그 돈도 못 써요? 하며 반발하는 것입니다. 반발하는 거기에서는 부자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버지, 젊은 사람이 돈을 좀 쓴다고 왜 그러십니까? 나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 한 번이라도 돈을 더 탈 수 있는 겁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 반면 딸 중에도 막내딸이 있는데 그는 평상시에도 아버지가 말하기 전에 알아서 척척 모십니다. 이리 가라 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 하면 저리 가고, 가다가 오라 하면 오고, 또 가라 하면 가고 합니다. 그렇게 왔다 갔다 열 번이라도 하면서도 오히려 아버지께서 저희들 때문에 이러시니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생각이 번잡하시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은 괜찮으니까 그저 아버지께서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딸은 먹을 것이 있으면 안 먹고 아버지께 드리려고 하고, 아버지께서 저녁에 일찍 돌아오지 않으면 대문밖에 나가서 울면서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소문이 퍼지게 되지요? 그 얼마나 사랑스러운 거예요?

조그만 일에도 정성입니다. 뭐 빵 한 개 가지고도 아버지께 드리겠다고 하니 소문이 쫙 퍼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딸은 자라는 데 있어서 학교에 안 가도 좋다고 합니다. '학교에 가면 뭘 합니까? 저 오빠같이 아버지 어머니 속썩이는 사람 되면 뭘 합니까? 대학교도 싫고, 국민학교도 싫고, 다 싫고 아버지 어머니 좋게 해드리고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도록 시집을 못 갔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버지 어머니가 그 딸을 보게 될 때 시집가지 못한 것을 한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그 딸이 시집갈까봐 걱정할 것입니다. 그렇게도 재미있게 그렇게도 소중하게 그렇게도 편하게 그렇게도 사랑한 딸을 시집보내 놓고 살 수 있겠어요? 그 딸이 시집가게 된다면 다른 아들딸을 다 버리고 그 딸을 따라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따라 나선다면 그 아버지 어머니의 재산은 어떻게 되겠어요? 아버지가 아들딸을 모아 놓고 너는 장남이니까 내 소유의 절반을 뚝떼어 준다고 하겠어요? 아들딸 각자에게 재산을 전부다 분배해 주겠어요?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안 그런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몽땅 사로잡고,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부모를 위해서 고생한 딸에게 재산을 몽땅 상속해 준다는 것입니다. 둘도 없는 딸을 가졌다고 생각하게 될 때, 부모는 다른 아들딸을 모두 버리고 시집가는 그 딸을 따라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는 재산이고 무엇이고 몽땅 그 딸에게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결국은 무엇이냐 하면, 부모를 위해서 다른 형제들보다 더 슬퍼하고, 더 마음을 쓰고, 더 고생을 하고, 더 참고, 더 서러워하고, 더 눈물을 흘리고. 더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부모를 붙들고 가는 사람에게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해 주는 것을 우리 인간 세상에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인간 세상에서도 그러한데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살게 되면 하나님도 그럴 게 아니겠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백번 천번 죽어도 좋고, 욕을 먹어도 좋고. 감옥에 들어가도 좋고, 마귀 사탄이니 이단의 괴수니 하는 비난을 들어도 좋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는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맨 마지막 고비는 시험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일을 가지고는 시험하지 않습니다. 어느누구나 하지 못할 것으로 시험하는 것입니다. 천 사람이 같은 급에 있으면 천 사람이 다 할 수 있는 것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천 사람 중에서 999명은 떨어져 나가고 한 사람만이 남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이요, 비정상 적이요? 여기서 하나님이 '해라' 했을 때 하지 못하는 사람은 전부다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나는 이런 것은 믿고 저런 것은 안 믿겠다' 혹은 '이런 것은 생각하고 저런 것은 생각하지 않겠다'라는 어떤 한계선을 정하면 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상관없이 죽으라면 죽고 가라면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아들딸이 있으면 하나님은 누구를 붙들고 사정하겠습니까 ? 누구를 붙들고 역사하고, 누구에게 찾아와서 가만가만 일러주겠습니까? 내가 정통이요. 통일교회는 이단이라고 하는 목사들에게 그러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단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한번도 신문광고를 통하여 반박 성명을 내 본적이 없습니다. 내가 반박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전체, 세계 전체에서 통일교인들이 나타나 세계를 대해 반박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핍박을 하더라도 선생님은 가만히 앉아서 못난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