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집: 예수님의 한 1968년 01월 1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2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세워 "으신 기준

예수님은 이 땅에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세상은 타락한 세상이요, 어차피 어느 한 때 해결해야 할 세상이기에 이 세상을 해결해 버리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이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을 해결하는 세계가 문제입니다. 해결해야 할 세계가 문제가 아니라 해결하는 세계가 문제이고, 해결해야 할 심정이 문제가 아니라 해결하는 심정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내용을 알고 구원의 세계, 구원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그런 용자이셨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세계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을 찾기 위해 만민을 대신하여 혈혈단신 탐험의 용자로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가운데 기록되어 있지 않은, 많은 안타까움이 그 심정 깊숙히 뿌리 내려져 있었습니다. 스스로 만민의 구주라고 인정할 수 있고, 하늘과 땅을 걸어 놓고 하나님과 사탄을 걸어 놓고 싸움하는 그 노정에서 이것이라고 해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있지 않으면 사탄세계에 대해 하나의 승리의 중심을 세울 수 없고, 하나의 승리의 뜻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에 그를 위해 애쓰지 않으면 안 되는 안타까움이 있었던 예수님의 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모험가였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서는 탐험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떠한 인연과 사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의 세계를 찾기 위해서 모험의 자리로 뛰어드신 분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나 혹은 어떤 지역을 탐험하기 위해 뛰어드는 모험가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상에 있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모험의 표적으로 세워 놓은 최고의 기준은 무엇이냐? 예수께서 공인할 수 있는 최고의 기준은 무엇이냐? 순교의 고개도 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참된 그 무엇이 있다 할 때는 죽음을 걸어 놓고 사무친 심정을 붙들고 나설 사람들이 그래도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심정의 세계를 세우려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갈보리 산상에서 애통하게 죽어갔던 예수로 하여금 세계를 이끌 수 있는 입장에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참의 세계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과 어떠한 모험과 함정이 있다 할지라도, 내 몸을 던져서라도 일생을 바쳐 찾아가야 할 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