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집: 자녀의 날과 그 사명 1971년 11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2 Search Speeches

복귀섭리의 '심종교" 기독교

예수 자신이 자기는 하나님 앞에 독생자라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들이 있더라도 독생자를 먼저 사랑하고 나서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몽땅 그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고 선언한 예수의 입장을 두고 볼 때에, 예수가 자랑할 수 있는 전폭적인 중심이 무엇이냐? 독생자라고 자랑한 그 자랑이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도 먼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요, 전폭적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표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특이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인간들을 대해서, 자기를 신봉하고 따르는 신자들을 대해서 '나는 신랑이고 너희들은 신부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신랑 신부라는 것은 상대적 관계로서 인간세계의 신랑 신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남성으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로, 이 땅의 상대세계를 대해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중심존재로 자처하고 나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따르는 신자들을 대해서 신부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신랑 신부라는 정서적인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최고의 길이요, 단 하나밖에 없는 길이 아닐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형제의 인연을 말했습니다.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 혹은 형제라는 말까지 했던 것입니다. 친구와 형제라는 것은 세상의 인연을 따라 가지고 나타난 친구나 세상의 자기의 혈육의 인연을 통해 가지고 태어난 형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은 형제적 내연을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주해 가지고 첫번째 아들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을 위주해 가지고 그 아들로서 상대적 대상인 신부의 기준을 요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제와 친구의 내연을 소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중심삼고 그런 내용을 소개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소개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이것은 그 어떤 종교가 갖지 못한 사랑을 중심삼은 핵을, 핵심을 제시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역사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과연 하나님이 역사노정에 있어서 중심적인 종교로 생각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소개한 기독교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기독교는 발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탄은 극성맞게 반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과 불효하는 사람이 있다면, 효도하는 사람은 불효하는 사람에게 규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효자가 열심히 부모에게 효도하면 그 효도하는 조건들이 불효자를 규탄할 수 있는 재료와 요건이 되어 가지고 반대적으로 규탄해 버리기 때문에, 불효자일수록 효도를 하는 사람을 원수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하나님 앞에 효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원수 되는 사탄은 누구보다도 그 사람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악한 세계에서 살면서 하나님 앞에 효도하겠다고 하는 무리들을 사탄 마귀는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최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제일 극심한 죽음길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종교역사 가운데서 비참한 역사의 운명을 다짐하면서 그 길을 극복해 나온 종교가 어떤 종교냐 하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선열들의 순교의 피를 연이어 가지고 역사적으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 효도하는 사람을 어떤 사람보다도 싫어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 어떠한 종교보다도 가혹한 시련과 핍박을 백방으로 가해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역사과정에서 순교한 선열의 터전 위에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역사의 전체적인 섭리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할 수 있는 중심적인 종교는 기독교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