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집: 예수와 우리 1969년 05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8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한과 통일교회의 사명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해야 될 것인데 그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친족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의 민족을 사랑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의 왕자가 이 땅 위에 오셔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었던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을 가지고 형제들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환경에 몰리고, 친척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오해와 몰림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뜻을 감추어 가면서 하루하루 생활했을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요셉의 가정에 있어서 자기가 불화의 원인이 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고 친척을 사랑할 수 없고 동생을 사랑할 수 없는 입장에 선 예수, 그가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요? 교회를 사랑할 수 있어요?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자식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친척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친척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민족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민족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의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해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이런 내용도 모르면서 예수님이 죽으러 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껄렁한 무리들이 통일교회를 보고 이단이라고 말하지만, 이단인가 아닌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기독교인들에게 몰리고 몰려서 감옥에 들어가 별의별 악형을 당하고 고문을 당했지만, 죽지 않고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과 우리'라는 제목을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의 한이 무엇이냐?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었고, 그 형제와 친척을 사랑할 수가 없었고 또한 종족과 민족, 교회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처량한 신세를 알고 난 우리들은 통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네방네, 심지어는 사돈의 팔촌에게까지 사생아라고 비웃음을 받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종 사촌인 세례 요한도 그 소문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노정이 여기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내용은 모두 모르고 그저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받는 줄 알고 있는 것은 옛날 로마의 가톨릭 신부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것을 새롭게 혁신시켜 하나님의 천륜의 법도를 거쳐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부모의 심정적인 인연을 이 땅 위에 세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하며, 친척을 사랑하지 못하고 민족, 국가를 사랑하지 못한 예수님의 원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한의 역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밝히 알려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