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전문가 1970년 02월 25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111 Search Speeches

생명을 책임진 전문가의 길

여러분, 나라가 없는데 효자가 될 수 있어요? 나라가 없으면 효자가 되고 싶어도 못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라를 위해서 밤잠을 못 자고 신음하고 있으면, 자식도 그 나라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나라를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뛰쳐나갈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어버이와 더불어 그 나라의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하늘의 효자가 되고 나라의 충신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합니까? 여기에 해당하는 정신이 곧 하나도 효와 충이요, 둘도 효와 충이요, 열도 백도 천도 만도 효와 충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죽더라도 어떻게 이러한 자리에 올라와 죽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섭리의 뜻을 짊어지고 나오는 사람들의 생활이었습니다. 충의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책임을 해야 하고, 종족까지 책임을 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그 책임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져야 되느냐? 문제가 거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효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충이라는 것은 국가적인 단계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를 위한 공적인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붙들고 나가게 될 때, 나는 비록 환경의 지배를 받았지만 효를 하였고 충을 하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눈을 감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원칙을 통하여 이루어진 국가는 그 원칙에 따라 간 사람을 효자로 또는 충신으로 공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유관순이 나라가 있는 상황에서 싸웠습니까? 또 주권이 있는 상황에서 싸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하여 어떤 충신보다도 더 큰 충성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녀의 가정에서 효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나라에 충성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 이겁니다.

그 충으로 인하여 종족적인 승리가 이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가정을 다시 찾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다 잃어버렸더라도, 산지사방에 있더라도 종족이 승리하는 날에는 그 씨족이 감명을 받아 가지고 가정을 수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잃어버렸던 가정이 다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어떠한 책임자든지 자기를 희생해 가지고 안팎의 모든 것이 자기로 인하여 수습될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승리가 결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씨족을 위해 살아야 되겠습니까, 민족을 위해 살아야 되겠습니까? 「민족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김씨면 김씨의 씨족적인 메시아가 되었다면, 그 메시아 된 책임은 민족을 필요로 하고 민족을 사랑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은 국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국가를 위해서 충성하는 것은 세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세계를 위해서 충성하면 거기에서 세계와 국가와 민족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면이면 면, 군이면 군, 도면 도를 중심삼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책임진 전문가로서 가야 할 길이란 바로 효할 수 있는 길이요, 충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이론적인 입장에서나, 실제적인 모든 면에 있어서 책임을 짊어진 중심적인 기둥이기에, 결코 불행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절대로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아 뒤넘이치는 험난한 환경을 넘어서 축복을 받았으니, 여러분은 정녕 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가인이 아벨에게 자동적으로 굴복해야 된다고 그랬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한테 자동적으로 굴복합니까? 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다」 자동적입니까, 권고적입니까? 자동적인지 권고적인지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