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2집: 정착시대 1990년 05월 06일, 한국 본부교회 Page #80 Search Speeches

혁명적인 소질이 있어야 탕감복귀도 하고 구원섭리도 이뤄

내가 우리 어머니에 대해서 한번 얘기를 해보지요. 우리 어머니는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의 마음이 자기의 마음이 아니었어요. 내가 이런 사람이 될 것을 어머니는 벌써 알았던지 집안 문중에서 나밖에 믿을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내가 말하게 되면 어머니는 무슨 짓이라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자협조는 탕감복귀도 모르고 다 수습이 된 것입니다.

또 우리 형님은 말이예요, 형님을 자랑하는 내가 안됐구만! 형님은 말이예요, 내가 뭘하자 하면 그냥 그대로 순응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알아요, 한 가지만. 이 형님은 몸에 병이 있었지만, 기도를 많이 해 가지고 해방될 것을 알았어요. 한 가지 아는 것은 뭐냐 하면 형님의 동생이 세계에서 일등 가는 동생이라는 겁니다. 그거 하나밖에 몰라요. 형님이 좀더 알아 가지고 나한테 물어 보았더라면 원리말씀을 다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의가 없어요, 무엇을 하더라도 말이예요. 내가 `이렇다' 하면 그렇게 알고 백 퍼센트 믿지, 의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가인복귀가 됐어요, 안 됐어요? 다 되었어요. 또 모자협조도 끝났어요, 안 끝났어요? 끝났습니다.

왜정 말기로구만. 관부 연락선 곤륜마루(崑崙丸)가 파선되었어요. 전보를 해서 그 배를 탄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날 내가 동경역에 나가려니까 기분이 좋지 않아서 역까지 갔다가 돌아선 겁니다. 그 전날 친구와 부사산(富士山) 가자고 약속한 것을 저버리고 떠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사산도 못 갔어요.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래 돌아 들어와 가지고 다른 데 갔지요. 그날 간다고 전보는 해 놓았고 말이예요. 그 연락선을 타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전보는 왔고 배는 깨졌으니 틀림없이 죽었다 이겁니다. 그래 어머니가 얼마나 기가 찼겠어요!

평안도 가게 되면 말이예요, 부인들이 치마 속에 입는 바지를 속곳이라고 하는데, 여자분이 치마도 안 입고 속곳 바람으로 달려간 겁니다. 그런 건 미친 사람이라구요. 아들이 그렇게 되었으니 환장을 해도 유만부동이지. 이래 가지고 신발 안 신은 것도 모르고 맨발로 천리 길을 달려간 것입니다. 천리도 넘어요. 그래서 발바닥에 무엇이 박혔느냐 하면 아카시아 가시가 박혔다구요. 그것이 깊이 들어가 가지고 심같이 굳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카시아 가시가 박힌 것도 몰랐다 이겁니다. 내가 그걸 보고 `어머니의 사랑이 이렇게 위대하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짜 죽은 줄 알았지. 이래 가지고 한 보름 후에야 내가 죽지 않은 것을 알고 말이예요, 정상적으로 돌아왔어요. 그러니 어머니로서 얼마나 기가 찼겠어요? 그래도 내가 외지에 돌아다니면서 손수건 하나 안 사다 드렸어요.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일본에서 지하운동을 하고 다…. 북경에서 김 구 선생 휘하에 들어간 녀석들은 요즘에 알고 보니 중국에서도 유명한 사람들이 되어 있더구만. 그런 지하운동을 했습니다. 국경을 넘을 때는 조사가 심하니까 차바퀴 있는 안쪽에 들어가 가지고 넘기도 했어요. 그런 놀음을 해 나왔어요, 나라를 찾기 위해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성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라구요. 혁명적인 소질이 있어야 탕감복귀와 구원섭리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주가 되어 가지고 영계를 훤하게 알고 말이예요, 영계가 어떻게 엮어져 가지고 현실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